모진 풍파 이기고 성공한 출향 기업인
북삼초교 장학금 지급, 각종 지원 등에 앞장
-회장님의 인생 역정을 회고해 보시면….
류=1947년 2월 6일 북삼면(현 북삼읍) 율2리 속칭 `들배미` 마을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가난한 가정 환경에서 어렵게 보내면서 초-중등학교를 겨우 마쳤습니다.
그리고 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온갖 굳은 일을 다하며 일상의 추위와 배고픔을 몸으로 견뎌내며 세상의 밑바닥을 전전하는 험난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굳은 신념과 정의감 하나로 내 자신의 인격을 연마하고, 마음 속 깊이 품은 꿈을 버리지 않고 항상 정진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인간상을 정립하며 살았습니다.
힘들었던 세월과 고난의 역경을 굳건히 이겨내고 지금은 부산시 남구 대연3동에 위치한 영남제분 주식회사 최고경영자(CEO)로서 새로운 상품개발과 시장개척 등 사세확장에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1994년 2월 제가 영남제분(주)의 경영권을 인수하게 된 것도 갑자기 이뤄진 일이 아닙니다. 당시 사료장사를 하던 제가 영남제분과 거래를 하면서 수년에 걸쳐 영남제분 주식을 조금씩 보유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결국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된 것입니다.
1959년에 설립하여 꽤 오랜 세월동안 배합사료 생산과 제분사업을 영위해 온 영남제분은 내가 인수할 당시에는 경영여건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회사의 중요한 자리는 사장의 친인척들이 차지하고 있어 조직이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3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회사였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먼저 회사에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겠다고 결심한 저는 조직을 정비하는 작업을 단행했습니다.
당시 사무실 내에 각종 서류가 제대로 비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공장을 둘러보았을 때 청소 불량으로 기계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저는 생산현장 직원들을 모아놓고 "공장의 모든 기계는 우리 회사 직원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존재이므로 그 기계들은 우리의 생명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 동안 흐트러져 있던 회사의 조직과 공장 내의 환경을 하나씩 새롭게 정비해 나간 결과 오늘의 영남제분을 이루게 됐습니다.
-영남제분의 최근 뉴스거리는 무엇입니까?
류=영남제분은 지난 8일 이사회를 열어 창업·벤처기업 투자업체인 아시아인베스트먼트의 지분 26.43%를 취득키로 결정-공시한 후 26일 취득금액 26억5000만원(자기자본의 5.8% 규모)으로 아시아인베스트 전체 발행주식 140만주 중 37만주를 취득하는 등 날로 회사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영남제분은 이에 앞서 지난달 18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열린 `제4회 푸드뱅크 식품나눔 전국대회`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고향 북삼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점은 무엇입니까?
류=1986년 어려운 농촌의 실정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저는 당시 고향 마을의 주민들이 모이는 공공건물이 없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지상 2층, 55평 규모의 마을회관을 신축하는데 전액 사비를 털어 마을에 희사했습니다.
북삼면사무소 준공시에도 사무실 집기 일체를 기증해 열악한 행정기관의 사무환경을 개선했고, 대민행정의 최일선에서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원들을 부산으로 초청해 선진지 견학을 실시하는 등 이들을 적극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 북삼읍사무소 마당에서 열린 제3회 북삼폴리페놀 참외축제에 참석, 고향의 농촌 후계자들을 격려하고 참외 5kg짜리 100상자를 구입해 부산으로 보내 고향의 농산물을 홍보하고 판매망을 확보-지원해 주는 등 어려운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지난 10월 2일 열린 제49회 군민체육대회 폐회 후 북삼읍체육회 임원-선수들을 격려하고 300만원의 기금을 출원하자 북삼읍체육회는 이 자리에서 북삼읍 체육진흥을 위해 저를 북삼읍체육회 명예회장으로 결정, 추대패를 전달했습니다.
-고향 못지 않게 모교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류=지난 10월 3일 개최된 북삼초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실질적으로 개최되기까지의 기반을 닦은 장본인으로서 총동창회 결성 초창기 약5년 동안 결성을 위한 소요 경비 일체를 부담했습니다.
북삼초교와 영남제분은 지난해 8월 북삼초교 U-class에서 리기옥 前칠곡교육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북삼초교 총동창회 임원, 운영위원과 어머니회 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교육공동체 협력체제 구축을 위한 `1교1사 자매결연` 협약식을 가진 바 있습니다.
영남제분은 해마다 1천만원의 `YNAM 장학금(영남제분 장학금 명칭)`을 북삼초교에 지급할 계획으로 한시적으로 올해부터 2012년까지 매년 졸업생 10명을 선정, 1인당 100만원씩 3년간(해당 학생의 고교 진학시까지) 지속적으로 장학금을 줄 것을 약정했습니다. 지난 2월 2010년도 이 학교 졸업생 중 10명을 선발, 1인당 각50만원씩 총500만원을 최초로 지급했습니다.
지난 9월 30일 올해 2월 최초 선발된 장학생들에게 2차 장학금 총500만원을, 지난 10월 3일 YNAM 장학금 수여식을 가졌습니다.
이밖에 지난 6월 30일 북삼초교(교훈 `꿈은 크게, 생각은 바르게, 행동은 겸손하게`) 교훈석 제작-설치와 학교교육 시설(진열장) 지원 등에 모두 1500여만원을 기탁했습니다.
본사와 `1교1사 자매결연`을 맺은 북삼초교 교원과 운영위원 등 50여명을 지난 8월 19일 부산으로 초청, 영남제분을 견학, 밀의 제분과정을 살펴보고 밀이 주식으로 없어서는 안될 곡식임을 직접 체험한데 이어 부산시 주요 관광지를 견학하고 돌아갔습니다.
-영남제분이 있는 부산에서도 제2의 고향사랑이 남다르다고 들었는데….
류=저는 영남제분을 그 동안 40여종의 고급분, 중력분, 강력분, 박력분 등 다양한 종류의 밀가루를 생산하는 업체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영남제분이 소재한 부산을 저의 제2고향으로 여기고 애정을 쏟았습니다.
우선 저는 부산역도연맹 회장으로서 역도 선수들의 기록은 물론 성격, 가정환경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정도로 34년간의 역도사랑은 특별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1976년 부산역도연맹 이사로 이름을 올리면서 연맹과 인연을 맺은 후 1993년부터 2001년 회장으로 일했고, 2009년 다시 연맹 회장으로 복귀, 2년째인 지난 10월 제91회 전국체전에서 부산 역도는 금메달 8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7개를 따내 부산과 경남이 분리 출전한 이래 최초로 종합 3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전국체전 직전에도 특별훈련비 2000만원을 지원, 선수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고, 체전 중에는 1000만원을 추가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선수 해단식에서는 선수 80명, 지도자 10명, 8개 초-중-고 학교 역도 담당교사 8명 등 총98명에게 역도연맹 차원에서 격려금을 전달하는 등 부산지역 스포츠 저변확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7년간 회장 자리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매년 4000∼5000만원을 지급했으며, 지난 1995년 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를 부산에 유치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전 종목을 통틀어 아시아선수권대회가 부산에서 열린 것은 부산 개항 이래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회에는 아시아 23개국이 출전했고, 특히 베트남이 통일 이후 처음 출전한 국제 스포츠대회였습니다. 당시 베트남이 출전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고 하자 필요한 모든 경비와 대회운영비 대부분을 댔습니다.
또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 때는 혼자서 부산 기업체 회장들을 설득해 억대 후원금을 만들어 연맹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부산고교 선수들이 졸업후 고향에 정착할 수 있도록 대학팀을 창설, 선수들이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역도경기장 건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역도 발전기금 조성을 위해 매년 3천만원 정도를 내놓을 계획이며, 연맹 부회장-이사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면 머지않아 4∼5억원은 조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종자돈으로 삼아 어려운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청사진을 그리며 하나씩 그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