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읍 석전리(石田里·돌밭마을) 귀바위(속칭 귀바우라고도 함) 자연부락으로 들어서니 350년 된 광주이씨 귀암종택(석전리 625번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을이름 유래에 따르면 원래 10개의 귀바위가 있었으나, 6·25전쟁 이후 1개 바위가 소실되어 현재 9개 바위만 동네 한 가운데 남아 구암(九岩) 또는 `구바위(속칭 귀바위라고도 함)` 마을이라 전해진다. 이도장(李道張) 선생의 장자인 이원정(李元幀·1622∼1680) 선생의 자는 사징(士徵)이고, 호는 귀암(歸巖)이요,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이 집안은 신3리 웃갓 석담 이윤우 선생으로부터 시작하여 石田里 광주이씨 4대 한림(翰林)집안으로 유명하다. 이원정은 효종3년(1652년)문과에 합격하여 1677년(숙종3) 대사간(大司諫), 대사헌(大司憲),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형조판서(刑曹判書), 1679년(숙종5년) 이조판서(吏曹判書) 관직을 두루 거쳐 지냈다. 경상도 사람으로 드물게 이조판서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렇지만 이듬해 향년 59세에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저술(귀암선생 문집)은 12권 6책이 남아 있다. 재임시 영남지방의 대동법을 실시한 것은 도민들의 생활에 크나큰 혜택을 주었다. 1670년 청나라에 갔을 때 사은부사(謝恩副使)로서 외교관계를 원만하게 수행하였다. 공은 당대의 명신이요, 시문에 뛰어난 학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귀암종택 동편에 있는 송림 동산재는 경북도문화재 제503호로 지정 되어있는 낙촌정(李道長) 경암재(李元幀) 소암재(李聃命) 3대 재사(齋舍)가 한 울타리에 위치하고 있다. 연못 한 가운데 있는 소나무는 동산재의 멋스러움을 더해 준다. 동산재 담밖에는 귀암(歸巖) 이원정 선생의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정조 때 재상을 지낸 채제공(1811∼1884)이 비문 찬하였고, 귀암종택 사당에는 불천위인 이원정 위패와 4대조를 합하여 5위가 모셔져 있다. 2009년 6월에 귀암종택안에 있는 350년 된 고목 3그루(향나무, 백일홍, 회나무)가 경상북도지정 보호수로 등록되었다. 현재 귀암종택 소장 고문서는 서울역사박물관 3,000여점 외에도 유품, 공예품 30여점 등 3대에 이르는 문집목판 499점을 함께 기증하였다. 칠곡을 빛낸 학자 광주이씨 문중 매원마을 朴谷(이원록 선생) 관터마을 이만운 선생, 특히 신리 웃갓마을 石潭(이윤우 선생)은 당대에 학술문화를 주도한 영남학맥에 퇴계학맥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광주이씨는 15세 기말에 칠곡으로 낙향하여 명사들을 배출하면서 오늘날까지 칠곡을 대표하는 명가로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귀암종택에 있는 회나무는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말없이 묵묵히 서있다. 귀암종택 현13대 종손인 이필주(李弼柱)씨는 "종손으로서 예(禮)를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편리한대로 고쳐서 지키는 예는 예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호로 `우리고장 학자를 찾아서` 연재는 마칩니다. 그 동안 도움을 주신 문중어르신과 이택 칠곡문화원 부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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