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99%의 공정률로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5단지(1단계). SK하이닉스는 구미시가 파격적인 입주 조건을 제시한 이곳을 무시하고,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부지 내에 축구장 5면을 이전해야 하는 등 난관이 예상되는 용인을 선택했다.
120조 원 규모의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구미 유치가 사실상 물거품이 되자 구미 유치로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했던 상당수 칠곡 주민들도 허탈해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실무위원회는 지난 15일 산업통상자원부가 SK하이닉스 용인 공장 신설을 위해 신청한 산업단지 특별 배정 요청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이 안건이 조만간 본위원회를 통과하면 문재인 정부 첫 수도권 규제 완화 사례가 될 예정이다.
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SK하이닉스가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게 하려고 산업부가 신청한 산업단지 추가 공급(특별물량) 요청안을 통과시켰다.
수도권정비계획에 따라 2018~2020년 경기도에서 산업단지 개발 물량은 617만㎡로 제한돼 있으나 이미 이를 초과했다.
용인시를 비롯한 수도권은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면적을 제한하는 ‘공장건축 총량제’가 적용되고, 국가 필요에 따라 이를 초과하려면 관련 부처의 장이 요청해 국토부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불가피하다고 인정할 경우 국토부 장관이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를 용인으로 신청한 이유는 ▶국내외 우수 인재들 수도권 선호 ▶대·중소기업 협력 생태계 조성 ▶이천, 청주, 기흥, 화성, 평택 등 반도체 기업 사업장과의 연계성 ▶전력·용수·도로 등 인프라 구축이 쉽다는 장점 등을 들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원사 244개 사 중 약 85%가 서울-경기권에 위치하고 있다. 용인에 신규부지를 조성하면 실시간 유기적 협력관계가 가능하다”며 “반도체산업은 기술개발 및 생산 전 과정에서 제조사와 장비·소재·부품 업체 간의 공동 연구개발(R&D), 성능분석, 장비 설치-유지보수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예정부지인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는 산업단지로 처음부터 조성공사를 해야 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예정부지 내에는 용인시축구센터가 들어서 있다. 용인시축구센터는 사업비 310억여 원을 들여 원삼면 죽능리와 독성리 일대에 15만6천918㎡ 규모로 조성돼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현재 축구장 5면, 미니축구장 1면, 기숙사 1동, 축구전시관, 행정동 등이 들어서 있다. SK반도체 클러스터 용인 선택 시 용인시축구센터 이전과 조성공사에 따른 예산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다.
SK하이닉스는 구미국가산업5단지 분양가 인하와 원형지 공급, 대규모 열에너지 공급, 차별화된 인센티브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제시한 구미시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구미국가산업5단지는 구미시 산동면(1단계)-해평면(2단계) 일대 총 934만㎡로 1단계는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국내외 우수 인재들의 수도권 선호, 즉 구미 산동-해평면 농촌지역으로 오지 않는다는 등 이유로 용인을 선택한 것이다.
요컨대 넓은 집은 물론 사랑하는 신부를 위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농촌 총각에게는 ‘몸’만 오면 되는데, 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구미도 반도체 핵심재료를 생산하는 SK실트론이 있다. 타지역의 경우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특별법부터 분양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소요되는데 구미5국가산단은 대규모 생산공장 부지와 관련, 인프라 조성이 이미 마무리된 상태다.
더구나 구미5단지 같은 국가산업단지는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정하고, 국가기간산업과 첨단과학기술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한 곳이다. 그렇다면 정부도 국가산단 분양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
특히, SK하이닉스 용인 공장 신설을 위해 신청한 산업단지 특별 배정 요청안이 본위원회를 통과하면 문재인 정부의 첫 수도권 규제 완화 사례가 되는 만큼 문재인 정부도 지방을 무시하는 정책을 펼친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 “지역으로 사람이 모이고 지역으로 기업이 몰리는 국토 균형발전의 새 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공약하신 말씀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러나 작금에 지역 균형발전은 먼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이제 ‘서울공화국’ ‘서울민국’이라는 말이 지방의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가고 있다.
‘42만 구미시민을 대표해서 간절히 국민청원을 올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1월 3일 청와대에 올린 ‘국민청원’ 일부 내용이다.
‘공장건축 총량제’ 등 수도권 규제 시책은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막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가 30년 넘게 추진해온 지방 살리기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나 이에 반하는 수도권 규제완화는 친기업 정책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에서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2008년 수도권 과밀억제-성장관리권역 내 기존 공장 증설과 첨단업종 입지규제 완화가 그 시작이었다. 뒤를 이은 박근혜 정부도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펼쳤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용인으로 최종 결정된다면 이는 공장 하나가 수도권에 들어서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규제 완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1000대 기업 총매출액의 약 80%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공장증설을 허용한다면 개별 기업문제를 넘어 국가적으로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공동화(空洞化·텅 비어감)를 부추겨 수도권과 지방의 ‘부익부빈익빈’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정부는 ‘선 국가균형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라는 확고한 틀 안에서 기업환경 개선에 노력해야 하며, 반드시 수도권 공장총량제는 지켜져야 한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구미시와 천안시 등에서 쏟아져 나온 주장이다.
이성원 편집국장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