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진보정치의 거목 토니 벤이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25세 때 최연소로 하원에 진출하여 50여년의 최장수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수차례 최다득표로 당 집행부에 선출되었고, 당의장과 두 번의 장관을 역임했으며, 당권 도전에도 두 차례 나섰다. 그러나 18선의 긴 정치여정에서 사임하고 좌천/해고되고 도전하다 깨질지언정 그는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타협하지는 않았다. 벤이 죽은 지 하루도 안 돼 유튜브에는 그를 회고, 추모하는 동영상이 백여 개 가까이 올라왔고, 주요 일간지와 BBC는 연일 헌사와 특집을 쏟아냈으며, 캐머런 보수당수상을 비롯한 좌우의 전 현직 정치인들은 사적·공적 상실감을 앞 다퉈 토로했다. 영국사회가 한 좌파 정치인에게 표하는 애도를 보면서, 인물 중심의 영국노동당사 쓰기를 미뤄오던 나로서도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소신있는 ‘지식인 정치인’ 죽음에 영국사회가 애도
정치인 벤과 관련된 일화는 넘친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상원의원이던 아버지가 죽자 장남에게 자동적으로 계승되는 작위를 영원히 포기하기 위한 법적 투쟁에서 승소하여 상원의원이 되는 것을 피했고, 10여 년 전에는 “정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위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제도권 정치를 떠났었다. 실제로 그는 은퇴 후 영국 전역을 돌며 대담과 강연을 통해 정치 밖의 정치를 이어나갔다. “헌신된 사회주의자 벤”, “세금을 올려라”, “전쟁에 반대한다” 등 이젠 유물이 된 그의 선거포스터들에 담긴 구호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는 이런 ‘낡고 치명적인’ 신조들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서남부의 부유한 도시 브리스톨에서 변함없이 당선됐다. 그의 선거포스터들은 총선패배 때마다 좌파몰이를 해대던 노동당지도부의 위선을 질타하며, 냉소와 비관주의야말로 기득권층이 습관적으로 활용하는 수사라며 사회주의의 희망만은 버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벤 자신이 수많은 글을 남긴 사상가요 이론가였지만, 영국정치사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지식계의 논쟁을 주도했던 ‘지식인 정치인’들이 넘친다. 그들은 정당정치가 요동하고 정책의 틀이 바뀔 때마다 이론과 사상의 뒷심을 대기도 하고, 회고록과 일기, 자서전, 전기, 편지 등을 출간하여 출판계를 달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령 벤이 정치에 입문하며 쓰기 시작한 방대한 양의 『벤 다이어리』는 영국 현대정치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제 필독서로 통한다. 물론 이 외에도 학문적 축적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정치권 밖에서 정치에 관여하고는 소임이 끝나면 학문탐구라는 본령으로 돌아가는 공적 지식인들의 숫자는 끝이 없다.
누구나 정치를 욕하면서 누구나 정치인이 되고픈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정치의 지분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겠지만, 그 와중에 정치인의 자질과 정치의 품질은 날로 피폐해 온 것이 사실이다. 덩달아 지식인의 분주함은 단연 돋보인다. 그러나 사적 지식인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공공선에 투신하는 공적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정치 진입의 변은 거창했지만 이렇다 할 기여 없이 사라진 지식인들의 몰골이 선명하다. 분명한 신념과 이를 뒷받침할 지적 체계로 무장한, 그리하여 자신을 희생해서 공동체와 공공선에 투신할 태도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오웰은 글 쓰는 동기가 “불의에 대한 인식”과 “편듦의 정서”에 있다고 고백한 바 있지만, 진영의 명료한 대치선은 어디에도 없는데 기이하게 진영논리만 판치는 곳이 한국정치이다. 준비 안 된 정치인들이 설익은 지식인을 조급하게 활용하려니, 정치와 지식의 필요가 맞아 떨어져도 양쪽 모두 현장의 고통과 연민에서 유리된 채, 대책 없는 피상성에서 허우적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변변한 입장도 없이 유력자 쫓는 지식인들
단테의 『신곡』 지옥 편 맨 앞에는 천국과 지옥에서 모두 버림받은 영혼들이 배치돼 있다. 끝없는 행렬의 벌거벗은 사람들이 쉼 없이 달려드는 벌떼로 인해 피고름으로 범벅된 채 앞에서 달리는 무심한 깃발을 전속력으로 뒤쫓아 간다. 단테의 콘트라파소(contrapasso)는 이들이 지상에서 중립과 객관을 표방하며 어느 편(깃발)에도 속하기를 거부한 채 실은 기회주의적 안위만을 도모했음을 보여준다. 불의와 고통이 편만한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무지를 천연시키며 정략적 임기응변에만 분주한 정치인들, 변변한 입장도 없이 권력 주변을 서성대다가 때만 되면 유력자를 쫓아다니는 지식인들, 호학을 가장하면서 모호하고 뻔한 훈수로 한국정치를 농하는 근엄한 학자들이 여기에 속할지 모른다.
문득 8∼9년 전 에딘버러의 페스티벌 극장에서 있었던 벤의 강연이 떠오른다. 2천 명 객석에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섰던 청중들에게 그가 처음 던진 말은 이랬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내 말을 염탐하러 온 사람이 있다면, 가운데 통로(중도)나 우측 통로(우익) 아니면 ‘제3의 길’로 조용히 나가주시길 바란다.” 당시 블레어 노동당정부에 대한 촌철의 비판을 특유의 유머로 쓰다듬으며 말문을 열던 노정치인의 기개와 열광하던 보통사람들의 환호가 각별히 기억되는 오늘이다./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