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철도 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더니 영리병원의 설립을 허용하는 등 의료 민영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여러 번이나 규제 완화를 언급했다. 정부는 이런 정책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누가 보더라도 이러한 정책은 경쟁과 효율을 신앙처럼 숭배한 나머지 공공기관을 영리 기관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임이 분명하다. 정부는 이런 정책을 ‘개혁’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이미 그 장단점이 어느 정도 검증된 뒷북치기 정책에 불과하다. 90년대 이후 영·미식 자본주의가 세계의 모델로 등극하면서 진행된 민영화 조치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동부 지역의 대규모 정전사태, 일본과 영국의 철도 사고 등이 그것이다. 2010년 폭설로 영국의 관문 히드루 공항이 3일 동안 마비되었을 때 영국 공항을 재국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그 이유는 다국적 기업이 인수한 이 공항에는 여행객들이 편하게 앉을 의자도 사라졌고, 값비싼 식당과 매점만이 들어차 공항은 난리 북새통으로 거의 폭발 직전의 상황으로 갔기 때문이다. 2012년, 아르헨티나는 과거 IMF 위기를 맞아 외국 자본에게 팔아넘겼던 석유회사 YPF를 재국유화하였다. 지난 90년대 초 아르헨티나는 국가개혁의 이름하에 과감한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석유를 포함한 에너지 산업, 전화와 가스, 심지어 도로 보수에까지 가능한 모든 것을 민영화하였다. 국가채무를 해소하고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영 부문을 독점자본의 거대한 사냥터로 만들고 공익성을 지닌 재화와 서비스 영역을 민간 기업에게 배타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민간 기업이 신규투자를 기피하고 서비스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는 등 횡포를 자행하였다. 게다가 수많은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국민경제를 탈국적화함으로써 아르헨티나의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었다. 특히 스페인계 REPSOL사가 최대주주였던 YPF는 석유생산보다는 선물거래에 치중하여 석유생산량이 급감하여 급기야 아르헨티나는 석유를 수입하는 지경까지 갔다.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에너지 산업까지 민영화함으로써 국가의 경제주권 자체가 상실되었고, 독점 부문이었기 때문에 경쟁에 의한 효율성 향상 효과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탈규제’ ‘민영화’ … 공익성과 효율성을 함께 얻어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국가 기간산업, 장치산업을 인수한 사기업이 당장의 이윤과 무관한 장기 투자를 할 리가 없고, 수익 확보를 위해 요금을 인상시키기 때문에 실제 국민들이 져야 할 부담은 훨씬 더 높아진다. 우리나라의 여러 민자 고속도로처럼 이용자 부담도 크지0만, 세금으로까지 외국 자본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사실 ‘민영화’, ‘탈규제’라는 말 자체가 사실을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 민영화는 실제 국내외 독점기업의 공기업 인수, 즉 ‘사유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탈규제란 대체로 기업의 투자 및 이윤추구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외 금융자본과 대기업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탈규제가 경제가 살길인 것처럼 언론을 통해 국민을 세뇌시켰고, 정치권을 향해 집요한 로비를 해 왔다. 각 나라 정부 역시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안게 되었고 공공부문 노조가 부담이 되어 이러한 대안을 선택하였다.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면 임명 사장이 책임 경영을 할 수 없고, 노조와 야합하여 손실은 국가와 국민에게 돌리고 이익은 자신들만이 향유하는 일을 막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공기업의 방만함을 극복하기 위해 경쟁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 그리고 노조가 주장하는 대안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장기적인 인프라, 공공적인 가치의 유지 국민의 생명과 건강과 직결된 부분의 민영화, 즉 독점 대기업 인수나 과도한 영리 추구는 대단히 위험하고, 또 반드시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들 기업의 설립 목적이 이윤추구가 아니라 공익성에 있기 때문에 약간의 재정 부담은 불가피한 점도 있다. 그래서 정치권의 간섭을 배제하고 전문 경영인이 책임 경영을 하도록 하되,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부담을 전가시키지 않도록 노조, 전문가, 시민 대표를 이사진이나 지배구조에 참여시켜서 사회적 규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 당장 낙하산 인사를 거두고 전문 경영자가 재량껏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되, 공익성과 효율성을 함께 얻을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은 영리 병원 도입 문제가 큰 논란거리다. 그나마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있는 국민건강보험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극히 위험한 길이다. 대형병원의 고수익을 위해 가난한 국민들은 ‘돈이 없어서’ 일찍 죽어야 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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