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묵은해가 새해로 흘러간다. 그렇지만 이례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지난 13년간 한 해를 결산하는 사자성어를 여론조사로 선정해 온 에서는 올해를 ‘도행역시’(倒行逆施)로 묘사했다. 초나라 왕에게 부친을 살해당한 오자서가 친구인 신포서와 나누는 대화를 소개하는 가 출처이다. 자연스러운 물 흐름 같은 순리를 거스르는 퇴행의 서글픔이 느껴지는 말이다. “역시, 교수들은 먹물이야!”, 하며 웃고 넘기기엔 서글픈 상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억압적인 여러 이미지들이 영화 오버랩처럼 동시다발적으로 겹쳐진 채 떠오른다. 표현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하는 걸림돌들이 도처에서 발견되는 난처한 상황들이 그렇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일들만 되새겨 봐도 자유로운 흐름의 역류가 강하게 전해온다. 일부 노래방 기계에서는 그동안 자유롭게 불러온 어떤 노래들에 대해 “국방부 요청으로 삭제된 곡입니다. 선곡하지 마세요.”라는 친절한 금지 소개가 나온다는 소식이 등장했다. 심지어 처럼 우리 모두 공유하는 전통적 노래에도 이런 문구가 뜬다니 놀라운 일이다. 군부대에 납품했던 노래방 기계가 민간에 흘러나와 벌어진 불상사로 넘어가기엔 어리둥절한 역류의 충격파가 크다. 창조경제 아젠다…흥행돌풍 영화에 해답이… 전통과 권위를 인정받는 유력 문예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도 개인적 일탈로 웃고 넘기기엔 역류의 조짐이 전해온다. 이 문예지에서 정치적 이유로 한 작가의 소설 연재를 거부해 논란이 벌어지자 편집 책임자의 사과와 사퇴가 있었다. 바로 이 문예지에서 주최하는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소설가와 평론가, 두 작가가 수상을 반납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표현의 자유를 먹고 사는 예술가들의 투혼이 격정적인 몸짓으로 느껴지기조차 한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라고 한 전설적인 시인 김수영이 오랫동안 투고해 온 문예지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니 퇴행의 억압적 효과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한숨마저 나온다. 바로 이 무렵 뜨거운 화제를 몰고 온 영화 은 개봉 전부터 평점 테러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평점주기가 가능한 곳에서 10점 만점에 1점을 주는 기류가 감지됐다. 그러다가 실제 관람자들이 평점을 매기면서 이 영화는 9점대로 치솟는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천만 관객을 넘어섰던 , , 의 첫 주 대비 흥행기록을 넘어설 정도로 이 영화는 관객의 감흥을 보여주고 있다. 기이하게 보이지만 영화를 안 보고도 평점을 줄 자유가 있기에 한 영화를 두고 개봉 전후 평점이 큰 격차를 보이며 수직 상승화 반전이 발생한 것이다. 영화를 안 보고도 개봉 이전에 평점주기의 자유가 보장되는 걸 보면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드라마이다. 올해 와 에 이어 아웃사이더의 매력을 한껏 재현해낸 송강호가 맡은 송 변호사 캐릭터의 반전이 영화 관람의 묘미이다. 가난하고 빽 없고 학벌 없는 세무변호사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공판 장면들은 법의 정의와 반인권적 권력의 대항관계를 극적으로 파고든다. 이 영화 개봉 즈음 발표된 영화입장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관객수 2억 명을 넘어서는 기록을 달성했다. 지난해 1인당 한국인 영화 관람은 4.1회로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와 더불어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5대 국가 안에 든 것이다. 커져가는 영화산업의 파이에서 핵심은 표현의 자유이다. 의 창작 자유, 평점 주기 자유는 많은 관객의 호응과 함께 거둔 성과이다. 창조경제를 국정 아젠다로 내건 정부시책에서 표현의 자유는 본질이다. 정부측 개인적 일탈의 자유가 여타 표현의 자유, 특히 예술 표현의 자유 검열을 당하는 일이 새해에는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억압에 대한 대응은 예술”이라는 버나드 쇼의 지적처럼 표현의 자유는 창조경제의 대응으로 새해 희망의 메세지로 공명한다. /유지나 이화여대 불문과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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