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사람들은 약속을 정할 때 마땅한 장소가 생각나지 않으면 전주 한복판에 자리 잡은 ‘전주객사 (全州客舍)’를 만남의 장소로 쓰고 있는데 지금 이곳 전주객사는 풍패지관(豊沛之館)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전주역 관광안내소에 따르면 전주객사로 소개되던 각종 홍보물이 ‘풍패지관’으로 바뀐 것은 2012년의 일이라고 하는데 오랫동안 불러오던 전주객사를 풍패지관으로 부르려니 낯설기는 할 것입니다. 각 고을마다 있던 객사는 객관이라고도 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왕명으로 지어 벼슬아치들을 접대하고 묶게 한 일종의 관사를 말하지만 특히 전주의 객사는 다른 지역과 다릅니다. ‘풍패’란 중국의 한나라를 세웠던 유방(劉邦)의 고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건국자의 본향을 일컫는 것이지요.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예부터 ‘풍패지향’이라 했고 전주객사는 ‘풍패지관’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풍패지관(전주객사)은 1473년(성종 4)에 전주서고를 짓고 남은 재료로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원래 주관(主館)과 그 좌우에 동익헌(東翼軒)·서익헌(西翼軒)·맹청(盲聽)·무신사(武神祠)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북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도로 확장공사로 좌측의 동익헌이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풍패지관은 1975년 3월 31일에 보물 제58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9년에 일부 복원되어 현재는 주관과 서익헌, 동익헌, 수직사(守直舍)가 남아 있습니다. 주관 앞면에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푸른솔겨레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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