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霜降)이 지났습니다. 무서리가 내리다가 된서리가 내리게 되면 푸른 잎들은 모두 이울고 괴벗은 나무들만 처량하게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가을 햇볕이 따갑고, 곡식은 여무느라 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가을이 짧아지고, 가을이 없어져 간다고 한탄할 때가 많았는데, 올해의 가을은 상당히 성대했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에, 청징의 가을볕, 가을 소리들이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날씨와는 다르게 인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으로 얄궂고 짜잔하기만 했습니다. 국정원 댓글, 국방부 댓글, 여야 간의 막말과 폭로전, 어느 것 하나 우리를 편안하게 해준 일은 없었습니다. 겸하여 세상의 곳곳에서는 끔찍한 흉악범들이 날뛰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나 어머니까지 흉기로 난자하여 죽이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어찌하여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금전만능, 권력 만능에 도취된 세상 때문에, 인류에게 안락한 삶은 보장받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교(儒敎)가 목표로 삼았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나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위한 핵심적 실천논리는 바로 ‘효제’였습니다. 효제란 풀어서 써보면, 부자자효형우제공(父慈子孝兄友弟恭)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예뻐해 주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은 아우와 우애롭게 지내고, 아우는 형을 공손하게 대해주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효제가 빛을 잃고 망가지면서 세상은 이렇게 혼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며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 함은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오직 효제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어 넉넉해진다. 학문이 이미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지면 특별히 순서에 따른 독서의 단계를 강구하지 않아도 괜찮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렇게 다산은 효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근본’이라고 쉽게 썼지만, 다산의 표현은 ‘근기(根基)’라고 하여 ‘근본 바탕’이라고 표했습니다. 사람 되는 첩경은 독서입니다. 그러나 학문에 뜻을 두어야 제대로 독서를 하게 됩니다. 학문에 뜻을 둔다는 것 또한 먼저 ‘근기’가 세워져야 한다니, 효제가 아니고는 독서도, 학문도, 사람 되는 일도 불가능하다니, 효제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돈 때문에 혈육 간에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재산이나 유산 때문에 형제간에 원수가 되어 혈투를 벌이거나 소송이 줄을 잇고 있는 요즘의 세태, 이런 막된 세상의 치유에, 효제를 다시 강조하지 않고 다른 어떤 길이 있겠는가요. 다산은 부모에게 효도했고, 형제 사이에 우애가 돈독하여, 늘 자기 중형과 ‘형제지기’라고 강조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효제를 실천했기에, 다산의 학문인 실학사상에는 ‘근기’가 심어져 있어 2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모두 다시 효제로 돌아갑시다.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