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 가운데 3대 성군을 꼽으라면 꼭 정조임금이 들어갑니다. 그 정조임금은 세손시절부터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라는 일기를 썼는데 그것이 훌륭한 임금이 되는데 큰 보탬이 되었을 것입니다. 증자가 말한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날마다 세 번씩 나를 반성한다)"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기 쓰는 습관을 들였다고 하지요. 그리고 정조는 일기 첫머리에 꼭 날씨를 적었는데 지금 초등학생의 일기에 날씨를 적는 것은 정조의 모범을 따른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시작한 일기는 《일성록(日省錄)》으로 발전하여 마지막 임금 순종까지 150년 동안 2,327권이 쓰였고, 국보 제153호와 세계기록문화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성록》이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다른 특징의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에는 임금을 일컫는 말이 상(上)이라고 나오는데 견주어 《일성록》은 일인칭 한자인 "여(予)"를 써 스스로 쓴 일기임을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일성록》 가운데 정조가 쓴 부분을 보면 백성을 사랑했던 정조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것은 격쟁(擊錚, 조선시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임금이 거동하는 길가서 징이나 꽹과리를 쳐서 임금에게 하소연하던 제도)과 상언(上言, 백성이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지요. 정조의 《일성록》에는 무려 1,300여 건의 격쟁 관련 기록이 실려 있는데 행차 때마다 백성의 하소연을 듣고 그 해결책을 고민한 것은 백성사랑의 마음이 아니면 불가능 했을지 모릅니다./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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