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복이 동로마와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의 가을밤을 감탄사로 수놓았다.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3 특별행사중 하나인 ‘한국·터키 전통 패션쇼’가 11일 오후 8시~10시(한국시간 12일 오전 2시~4시) 이스탄불 힐튼호텔 컨벤션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한국-터키 전통 패션쇼’에는 주낙영 경상북도 행정부지사, 전태동 이스탄불 총영사, 압둘라만 쉔 이스탄불시 문화사회실장, 디자이너 네즈라 규벤치, 이영희 씨 등 한-터 양국의 주요 내빈과 초청인사, 교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톨가 카렐, 시넴 외즈튀르크 등 터키 유명 영화배우와 모델, 패션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12일(현지시간) 개막하는 ‘터키-한국 영화 주간’ 참석차 이스탄불을 방문한 김기덕 감독이 깜짝 방문해 양국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터키 NTV, 하베르 튀르크 등 현지 언론과 외신기자 30여명이 몰려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먼저 터키측 디자이너 네즈라 규벤치가 ‘전통과 근대의 만남, 아나톨리아 반도의 균형’을 테마로 한 80여벌을 의상을 선보였다. 천연 소재와 자연 색상으로 그리스 로마 여신의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들이 관람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네즈라 규벤치는 실크, 면 등을 활용한 친환경 패션을 추구하는 터키의 대표적 디자이너로 2002년 ‘LEJ’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규벤치는 골드만삭스가 선정한 10,000명의 여성리더 중 한명으로 터키 여성으로는 최초로 포함된 인물이다.
이어 이영희 디자이너는 신라, 고구려, 백제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전통한복과 궁중의상,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모던한복, 그녀 작품의 대명사가 된 ‘바람의 옷’ 등 100여벌을 선보였다.
금관을 쓴 왕과 왕비, 선덕여왕과 명성왕후를 재현한 모델들이 등장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의상뿐 아니라 의상에 맞는 다양한 헤어스타일, 귀걸이, 목걸이, 비녀 등 화려한 장신구도 큰 관심을 끌었다.
계절별 소재와 아름다운 색감으로 한국의 사계를 담아낸 작품에 이어 현대적인 드레스 라인과 은은한 한국적 색감으로 한국여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바람의 옷’이 무대를 장식하자 관중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마지막 무대는 터키 꼬마 세 명이 한복을 입고 뛰어 나와 사랑스런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주낙영 경상북도 행정부지사는 “옷을 통해 양국의 전통과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아름다운 한복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자 이 패션쇼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압둘라만 쉔 이스탄불시 문화사회실장은 “촉촉촉 이임(매우 매우 매우 좋다)!”이라고 감탄한 뒤 “양국의 역사와 전통과 현대적 아름다움이 한자리에 어우러졌다. 특히 이영희씨의 한복은 환상적이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태동 이스탄불 총영사는 “문화적으로 닮은 점이 많은 한국과 터키가 오늘 패션을 통해 더 가까워 진 거 같다”고 말했다.
이 디자이너와 평소 친분이 두터운 김기덕 감독은 “이영희 디자이너와 이스탄불-경주엑스포에 함께 참여하게 돼 기쁘다. 역시 세계 최고의 작품과 무대였다”며 극찬한 뒤 “터키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네즈라 규벤치 디자이너는 “이스탄불에서 한국과 함께하는 문화엑스포가 열려 기쁘다. 실크로드를 따라 이어져 온 한-터의 우애가 오늘 패션으로 완성되는 거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양국이 문화적으로 비슷하고 느꼈는데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당초 ‘한-터 전통 패션쇼’는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이슬람국가의 정서상 모델과 의상의 ‘노출’을 염려해 오스만제국의 궁전에서 개최가 어려워 힐튼호텔로 옮겨졌다. 한국측에서는 이기린, 송주, 박희연 등 톱모델 15명이 캣워크를 장식했다.
[인터뷰] 옷으로 한국 보여주는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한복이 문화외교 씨실날실 됐어요”
“우리문화 해외 가지고가 세계인 눈높이에 맞게 소개하고 가치 인정받아야”
“너무 흥분됩니다. 옷을 통해서 한국을 보여주고, 우리 한복이 문화외교의 씨실과 날실이 됐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11일 오후(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3 ‘한국-터키 전통 패션쇼’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이영희 디자이너가 패션쇼 직후 밝힌 소감이다.
이영희 디자이너는 “동양적인 선과 색, 전통적인 한복의 소재와 서양의 모던한 패턴을 접목해 재탄생시킨 작품 100여벌을 선보였다”며 “선덕여왕 등 삼국시대 의상을 모두 재현한 힘든 작업이었지만 한복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제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오면서 나부끼는 태극기와 이스탄불-경주엑스포 깃발을 보고 감격했다”며 “한국 대표디자이너로 참여하게 돼 영광”이라고 엑스포 참여 소감을 밝혔다.
이 디자이너는 이번 패션쇼에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바람의 옷’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전통 한복에서 저고리를 벗겨낸 것으로, 패션의 본고장 파리에서 태어났다. ‘바람의 옷’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르몽드’의 기자였던 로랑스 베나임이 붙인 것이다. 바람을 옷으로 담아 낸 듯, 자유와 기품을 담았다는 뜻이다.
그녀는 “서양 드레스처럼 어깨를 드러내며 여인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지만 한복 본연의 고아함을 잃지 않아, 첫 선을 보인 현장에서 세계인들이 찬사를 쏟아내던 그 순간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이 디자이너는 한복의 세계화와 현대화를 목표로 30년을 열심히 뛰어다녔다. 1983년 첫 해외 쇼였던 워싱턴 쇼를 시작으로, 1993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 파리 프레타포르테 무대에 섰으며, 20회 넘게 파리에서 컬렉션을 선보였다. 2004년에는 뉴욕 맨해튼에 한복 박물관도 열었다. 2011년에는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에서 역사상 최초의 한복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파리 프레타포르테 쇼에서 한복을 선보였을 때, 외국 기자들은 한복을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모노)’라고 불렀다. 해외에서는 한복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직접 ‘정보’가 되어 ‘한복’이란 제 이름을 찾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작은 노력이 보태져, 지금 한복은 당당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자 당당한 패션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피력했다.
이어 “한복뿐 아니라 다른 문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파리에서 태어난 ‘바람의 옷’처럼 우리 문화를 해외로 가지고 나가서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춰 적극 소개하고 알려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3’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강조했다.
또 “아시아와 유럽, 이슬람문화와 기독교문화가 공존하는 ‘문명의 용광로’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이번 엑스포가 우리 문화의 나아갈 길을 되새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더 많은 시도와 노력을 할 것”이라고 자신의 각오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