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낼 채비를 하는 부모들은 대입제도 개편안에 관한 기사가 뜨면 한숨부터 내쉬게 된다. 언론에서 다루는 다양한 정책 결정 문제는 일단 관심 한쪽으로 밀어낸다. 이번에 도입되는 수능개편안만이 여러 가지 기사들 틈에서 마치 그 부분만 돌출되어 보이는 ‘매직아이(magic eye)’처럼 엄마들의 눈으로 성큼 들어온다. 자녀와 관련된 소식이기 때문에다. 하지만 그 부담이 시험을 치러야 하는 당사자들보다 더하기야 할까. 필자 역시 수능 1세대이다. 94년에 처음 시행한 지 20년, 그간 17번이나 개편이 되었다면, 학생들 스스로 `실험용 쥐`나 다름없다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오늘도 집집마다 부모(주로 엄마가 될 것이다)의 한숨을 가방에 얹고, 무겁게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장면은 쉽게 그릴 수 있다.
몇백 년 전에도 입시 스트레스는 여전해
과거(科擧) 급제. 이는 모두 알다시피 조선시대 문·무관의 등용문이었다. 자신의 포부를 이루기 위해 도전했던 많은 젊은이들, 그들의 합격을 마음으로 응원하는 부모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시험의 압박감도 여전하다. 과거에 낙방한 아들은 입신하지 못해 결국 불효한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시대를 넘어, 크고 작은 시험에 한두 번, 불합격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마음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몇백 년 전 과시(科試)를 치르던 이들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건, 시험 결과에 따라 부모의 반응이 의식되는 사실은 변함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17세기 조선의 한 선비가 과거에 합격하고 쓴 시 가운데 “이미 재주 없어서 쓸데없음 알았는데 / 부모님 맘에 걸려 과거 놓지 못했을 뿐(已識才䟽非適用, 只緣親在不能休)”(曺漢英 `登第後口占言志` 中) 라는 구절이 있다. 몇 번이라도 중단하고 싶지만 실망하실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져, 결국 손을 놓지 못한다. 그렇다면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너희들에게 많은 부귀 원치 않으나 / 사십에도 이름나지 못하면 장차 어찌하리 / 날개를 민지 위에서 펼치려 한다면 / 내 머리 다 희기 전에 되길 바라마" (不願渠曹富貴多, 無聞四十亦將何, 若能奮翼澠池上, 幸當吾首未全皤”(崔恒慶 `歎兒落榜` 中)
시의 내용에서 짐작 가듯이, 과거에 낙방한 아들을 위해 지은 시이다. 자식의 앞날을 우려하는 심정이 담겨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심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정작 낙방한 아들은 ‘그래도 잘했구나’ 혹은 ‘기회가 또 오겠지’라는 위로를 듣고 싶었을 수도 있다. 철저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분리 구조 속에서, 과시에 응시한 젊은이들이 따로 선택할 활로가 없었다. 그만큼 과거 시험장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산과 같은 지식인은 과거제도의 폐단과 현실적 대응을 아울러 밝힌 바 있고, 동시대를 살았던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는 이러한 과장(科場)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과거 공부를 등지고 평생 독서만 하다가 어느 날 떨쳐 일어나 만금(萬金)을 빌려 유통업에 뛰어든 허생(許生)과 같은 이가 흔할 리 없다. ‘학업’ 외에는 선택의 폭이 턱없이 좁았던 당시의 현실이다.
‘다른’길이 반드시 ‘틀린’ 길은 아니다.
지금에야 어디 그러한가. 각자의 개성과 재능에 맞게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의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획일화된 사교육 시장은 이를 증명한다. 대입을 위한 주요 교과목의 성적을 기준으로 삼아, 아이의 총체적 능력을 가늠하려 한다. 매여진 틀 안에서 흠이 될 수 있던 부분이, 오히려 틀 밖으로 나오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려 들지 않는다. 서로가 너무 밀착되어 부모와 자식의 꿈이 뒤섞여 버리는 게 가장 큰 원인중 하나이다. 낯선 영어 유치원에 가게 되는 순간이나, 땅 밟을 시간도 없을 만큼 학원 셔틀에 실려 다니는 아이들에게 아이의 자발적 의지와 선택이 얼마큼이나 반영되어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부모의 노파심으로 ‘다른 길’은 ‘틀린 길’이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급제가 아니면 사대부가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순간에도, 과거를 거부한 지식인들은 많았다. 신분 차이,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을 넘어 ‘북학’을 실현시킨 이들이 있었다. 그 토대는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었다. 우선, 나와 아이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의 개입을 최소한 줄이고, ‘다름’을 존중해주었을 때, 비로소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능력을 배울 것이다.
/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