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당시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 무참하게 학살당한 미군 41인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한 한미합동 한국전통제례행사가 지난 16일 학살 현장인 칠곡군 왜관읍 자고산 자락 추모비 앞에서 백선기 칠곡군수와 라직 리챠드 주한미군 캠프케롤 6병기대대 대대장을 비롯한 관내기관장, 미군과 지역 안보단체 임원 등 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되었다.
이날 위령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칠곡군협의회(회장 김윤오)에서 캠프캐롤 6병기대대와 공동으로 주관해 마련되었으며 학살당한 날인 1950년 8월 17일을 기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한미친선사업으로 평화의 소중함과 전쟁의 아픔을 상기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위령제를 한미합동으로 매년 올릴 계획이다.
1950년 8월 17일, 경북 칠곡군 303전투에서 한국군 지원부대를 기다리던 미1기병사단 미군들이 접근해오는 북한군을 한국군으로 오인하여 방심한 상태에서 포로가 되었다.
낙동강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시기에 미군들의 반격으로 북한군을 압박해오자 포로미군들을 앞세워 낙동강 건너로 복귀를 시도하려던 북한군은 미군포로들에게 군화를 벗게 하고 그 군화 끈으로 그들의 손을 묶었다.
이에 반항하는 미군들은 즉석에서 살해하였고 굶주림에 지친 미군포로들을 303고지 아래로 끌고 가 따발총으로 무차별 난사, 모두 살해됐고 권총으로 확인사살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303고지 아래 도랑, 계곡에는 순식간에 총성과 비명소리로 하늘과 땅을 울렸다. 이때 45명의 포로 중 3명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생존하였고 41명이 그 자리에서 학살되었다.
이 처참한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라이언 이병(당시 17세)과 맨링 이병(당시 18세)는 노병이 되어 1999년도 한국을 찾아 그 당시 그 비참했던 현장을 증언하였고 바로 이 자리에 6·25참전유공자회 칠곡군지회의 주선으로 칠곡군수와 주한미군 캠프캐롤 사령관이 2005년도 10월 24일 이 이곳에 추모비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위치적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이 가기는 쉽지가 않아 평소 소홀한 관리로 추모비 주위 쓰레기가 방치돼 있고 잡초가 무성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민주평통 칠곡군협의회 15기 교육홍보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송인태(주한미군 캠프캐롤 6병기대대 민사담당) 자문위원이 칠곡군협의회의 정식사업으로 한미합동 위령제를 기획-추진하면서 지역 안보단체를 비롯한 주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송인태 리포터 sit5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