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바구니 속의 실타래도 한 번 뒤엉키면, 그 실마리를 찾아 잘 풀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는 세상이 복잡하고 험난하기는 엉킨 실타래에 견주어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닌가 보다. 내로라하는 유능한 인재들이 나랏일을 하겠다고 모두 나서서 끝없이 법을 바꾸고 제도를 개혁해 가는데도, 여전히 문제는 뒤엉켜 있고 새로운 문제가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가끔 다산선생이 지금 우리 시대에 다시 나온다면 어떻게 하실까 하고, 허황한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다산은 우리 사회의 문제에 근본이 무엇이고 말단이 무엇인지를 환하게 짚어주고, 일에 착수할 곳이 어디고 마무리할 곳이 어딘지 분명하게 가리켜줄 수 있지는 않을까?
다산의 탁월한 통찰력이 그립다
다산의 둘째 형 손암(巽菴 丁若銓)은 다산이 저술한 `악서고존(樂書孤存)`을 읽고 나서, "2천 년 동안이나 계속된 긴 밤의 꿈속에서 헤매던 (유교의) 음악이 지금에서야 정신이 들었다"고 극진하게 칭찬하였으니, 다산의 통찰력이 얼마나 명석하고 투철하였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다산 자신은 `춘추고징(春秋考徵)`의 저술에서, “위로 진(秦)·한(漢)으로부터 아래로 명(明)·청(淸)에 이르기까지 ‘교(郊)` 제사의 의례는 이렇게 속여 왔으니, 상제가 흠향하였겠는가?”라 하였다.
중국 역사를 통해 2천 년 동안 하늘에 드리는 제사인 ‘교’ 제사에 대해 본래 정신과 참된 원형을 밝혀냄으로써, 그 많은 학자들의 어지럽게 얽힌 이론들이 빠져든 오류를 쾌도난마처럼 명쾌하게 비판하여 쓸어내는 다산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하늘에 올린 제사가 모두 거짓에 빠져, 상제가 흠향하지도 않는 헛 제사를 지낸 것이라 단호하게 선언하였다. 여기서 그의 명석한 통찰력과 정대한 기상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게 된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기란 위험한 일이다
과거의 사실을 고증하는 데는 그렇게 투명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던 다산도 미래를 내다보는 데는 그 자신도 착각을 하였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다산은 「일본론」에서 “지금은 일본에 대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일본 유학자 세 사람(伊藤維楨·荻生徂徠·太宰純)의 글을 읽어보고 나서, 그 문체의 찬란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가 보다. 그래서 일본은 이제 오랑캐에서 벗어나 문물(문명)이 갖추어졌으니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200년 동안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는 사실도 그를 크게 안심시키는 요인의 하나였다. 그런데 다산이 걱정할 것이 없다고 깊은 신뢰감을 보였던 일본은 그 후 백 년도 안 되어 다시 침략해왔고 마침내 조선왕조를 멸망시키고 식민 지배를 하였으니, 그의 신뢰는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이 보여준 한 송이 국화꽃을 보고 감동하여 그 등에 감추어진 칼을 못 보았던가 보다.
한 잎의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미 가을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다. 한 모서리를 들어주면 세 모서리로 응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연관구조 안에서 유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미래는 경험해본 일도 없고 고정된 틀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유동적이고 복합적인 것인데,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여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지극히 불완전하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도 통찰력이 명석한 다산도 미래를 너무 단순화시키거나 낙관적으로 파악하는 착오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 같다. 어디에나 상반된 양면이 있다. 우방이라고 미국을 너무 믿을 수도 없고, ‘옛 친구’라는 말에 중국을 짝사랑하는 것도 위험이 있음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인식하는 역사관이 먼저 바로 잡히지 않으면 국사교육의 효과도 확보할 수 없고 또 다른 문제점을 일으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꼭 필요한 약에도 부작용이 따르는 법인데, 한쪽 면만 보고 다른 쪽 면을 소홀히 한다면, 어디서나 착오를 일으킬 수 있지 않겠는가?/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