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라고 말한다. 정치나 경제나 사람이 행하는 세상의 온갖 일에서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법으로 다스려 사회를 질서 있게 해야 한다고 ‘법치(法治)’를 강조하기도 하고, 예절로 다스려 풍속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예치(禮治)’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법이나 예절이 자동으로 세상을 다스려주는 것은 아니다. 법이든 예절이든 모든 것은 사람이 있어야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니, ‘인사’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을 쓸 때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어야
사람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우리 역사만 보아도 바늘구멍처럼 통과하기 어려운 과거시험이나 고시제도로 유능한 인재를 선발한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막상 정치현실에서는 온갖 간교하고 탐욕스러운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서 모략을 일삼고 부패에 빠져 한 시대를 망쳤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니 나라를 다스리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사람을 제대로 쓸 수 있는지가 지극히 중요하면서 지극히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다.
옛 사람들도 사람을 쓰는 ‘용인’(用人)이 중요함을 분명하게 인식해왔다. 퇴계도 “사람을 쓰는 일이 잘되고 잘못됨은 나라가 다스려지고 혼란함이 달려 있는 것이다.” 하였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 ‘용인’을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을 알아보는’(知人) 안목이 인사권을 지닌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요구되어 왔다. 이 안목이 바로 ‘지인지감’(知人之鑑)으로, 탁월한 인격과 역량을 지닌 인간이라야 지닐 수 있는 것으로 소중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으면 그 지식이나 학벌은 있어도 인격이 부실하거나 아첨하여 비위를 잘 맞추는 소인배를 등용하기 십상이다. 소인배는 자리나 지키고 이권이나 탐할 뿐이지,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이 없으니, 이런 인물을 등용하고서 그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그 기업이 무너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은 지도자의 필수적 자격조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서경』에는 어떻게 해야 덕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우(禹)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니, 인재를 제자리에 쓸 수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은혜로운 것이니, 백성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하였다. 다산은 이 구절을 무척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알아보는 것’(知人)과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安民)은 바로 『대학』의 가르침에서 근본취지요 결론이 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곧 ‘뜻을 참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먼저 ‘자신의 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은 ‘사람을 알아보는’ 기반이요,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한다’는 것은 바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과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져서 인재를 적소에 고루 쓸 수 있어야만 안정되고 건강한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자가 인격을 갖추어야
그렇다면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자가 자신의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넓은 포용력이 없으면 한쪽 당파에 치우쳐서 편협하게 사람을 쓰니, 소중한 인재들을 버리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공정한 마음이 없으면 자신과 친하고 가까운 사람만 쓰게 될 터이니, 조선시대 용렬한 임금이 외척을 끌어들여 권력을 안정시키려 들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맹자도 인재등용을 신중히 하도록 충고하면서, 좌우의 측근들이 모두 추천해도 불충분하고, 대신들이 모두 추천해도 불충분하고,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 인물을 ‘현명하다’고 말하면, 다시 그 사람됨을 살펴보고서 현명함을 알게 된 다음에 등용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자신이 등용한 사람이 잘못 등용되었음을 알면, 먼저 그 자신의 마음이 공정하였는지, 넓은 포용력과 밝은 지혜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하였던 것이 아닌지 철저하게 반성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