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는다면 착한 일은 바로 할 수 있어서 덕행(德行)을 실천할 수 있지만, “허물을 저지르고도 반성하거나 고칠 줄을 모른다면 그때는 끝내 덕(德)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현자(賢者)들이 착한 도(道)로써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정자(程子)의 `논어`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이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은 정말로 의미 깊은 뜻이 있습니다. `논어`의 학이(學而)편에는 세 마디의 글귀가 있습니다. “주충신(主忠信)하며, 무우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니라”라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언뜻 보면 글귀마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어 서로의 사이에 구체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의미를 따져 분석해보고, 풀이해보면 깊이 연관되어, 세 구절이 함께 해석되어야만 공자의 본래 의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다산은 `논어고금주`라는 `논어` 연구서에서 주(主)의 뜻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주’란 수야(守也), 종야(宗也)라고 해석하여 ‘충신을 주하다’ 함은 충신(忠信)을 지킴이요, 충신을 최고의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풀이했습니다. 정자(程子)는 ‘충신’의 뜻을 성(誠)과 연결하여 “정성스럽지 않다면 사물(物)자체가 없다.”라고 말하여 성실(誠實)을 충신의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인간이 참으로 성실할 때에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벗으로 삼지 않는다[無友不如己者]는 뜻으로 연결되고, 자기보다 높은 수준의 어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때에만, 어떤 것이 잘못된 일이고 어떤 일이 착한 일인가를 알게 되어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아야 하느니라’[過則勿憚改]로 이어져서 공자께서 하려던 말씀의 뜻이 제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주자는 벗이 자기보다 못하면 이익은 없고 손해만 본다고 하였고, 다산은 ‘허물을 고치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改過不吝]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인사권을 가진 통치자나 기관장들은 자신보다 더 능력 있고 우수한 사람은 꺼리고, 만만한 사람만을 등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교에서도 참으로 능력 있고 탁월한 제자를 발탁하여 제자 교수로 삼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나 학식보다는 더 아래 단계에 있는 사람만 교수로 발탁하려는 현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기도 합니다. 결격사유가 있고, 약점이 있는 사람을 불러다 충성을 바치게 하려는 인사 관행 때문에 말썽은 언제나 일어납니다. 참으로 정성되고 성실한 마음을 으뜸으로 여겨 끝까지 지키는 자세를 지니고 어떤 면에서건 자신보다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만을 발탁해서 고관의 자리에 앉혀야 하고, 그래도 사고가 나거나, 잘못된 일이 생기면, 즉각 허물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고치기를 꺼리지 않아야만 된다는 것이, 공자·정자·주자·다산의 뜻이었습니다. 요즘 청와대의 불미스러운 추행사건의 보도를 보면서 `논어`의 말씀과는 너무 멀리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과즉물탄개!’ 고치고 반성할 줄 아는 세상이 그리워집니다./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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