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이 말은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가 쓴 장편시 「황무지」의 첫 구절인데 해마다 4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금년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4월 11일, 조영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식에서 「황무지」를 인용하여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드는 달”이라며 “겨울의 암흑을 뚫고 새 생명을 태동시키는 4월이 저에겐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은 검찰이 사정 수사를 예고할 때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라고 한다. 사정 수사를 통하여 비리에 연루된 공직자들을 구속하는 일이, 아름다운 계절인 4월에 걸맞지 않게 ‘잔인한’ 행위라는 뜻일 것이다. 또 4월 27일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을 방문한 윌리엄 번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며 “요즘이 제일 좋은 계절인데…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 날씨가 4월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한다. 이 역시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4월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일 것이다.
◆4월은 왜 잔인한가
이처럼 4월만 되면 자주 인용되는 「황무지」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멍청한 뿌리를 봄비로 뒤흔드니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어주고
마른 덩이줄기로 가냘픈 생명을 이어주었으니
1922년에 발표된 이 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서구인들의 내면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명분 없는 전쟁의 참화를 겪은 사람들은 가치관을 상실한 채 적극적인 삶의 의욕마저 포기하고 취생몽사(醉生夢死)의 나날을 이어간다. 마치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무지와 같은 삶이다. 멍청하고 무기력한 뿌리와 같이 취생몽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4월 달 봄비가 내려 새 생명을 싹 틔우는 것은 분명 잔인한 일이다. 잠든 영혼을 각성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난겨울이 따뜻했다고 느낀다. 대지를 덮은 눈이 모든 걸 잊게 해주고, 땅속 마른 덩이줄기가 영양분을 공급해주어 최소한의 생명은 이어주었기 때문이다.
◆어찌 4월만 잔인한 달이랴
이렇게 보면 조 지검장과 윤 장관의 말은 엘리어트의 의도와는 다르게 쓰였다. 이처럼 타인의 글 중 일부를 원작의 의도와는 다르게 따다 쓰는 것을 ‘단장취의(斷章取義)’라 하는데, 한자문화권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 그렇게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조 지검장과 윤 장관의 ‘단장취의’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지만, 엘리어트의 대표작 「황무지」의 본뜻을 좀 더 깊이 이해했더라면 보다 품격 있는 언술(言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찌 되었건 2013년 이 땅의 4월엔 잔인한 일이 많았다. 북한의 핵실험과 전쟁 위협, 개성공단 폐쇄, 일본 아베 총리의 망언(妄言)이 있었고, 어린이집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이 잇달았으며 아파트의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을 하는 일도 있었다. 이 밖에도 잔인한 일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그러니 4월이 잔인한 달이라 말하는 것은, 엘리어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찌 4월만 잔인한 달이랴.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가공할 만한 잔인한 일들이 일 년 내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1차 세계대전 이후와는 또 다른 황무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엘리어트가 지금 살아있어도 복합적인 의미를 담아 여전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절규하지 않을까./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