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81년 전 오늘은 윤봉길 (1908. 6. 21 출생 24살로 의거 순국)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지금은 노신공원)에서 일제의 조선침략을 만천하에 응징한 날입니다. “제가 채소 바구니를 등 뒤에 메고 날마다 홍구 방면으로 다니는 것은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중략)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죽을 자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동경 사건과 같은 경륜이 계실 줄 믿습니다. 저를 믿으시고 지도하여 주시면 은혜는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위는 ≪백범일지≫에 나오는 이야기로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만남 장면입니다.
거사 당일인 4월 29일 새벽 백범은 윤봉길 의사와 마지막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고 거사 장소로 나서기 전 윤봉길 의사는 앞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6원짜리 시계를 백범에게 주고 자신은 백범의 2원짜리 시계를 찹니다. 그리고 백범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현장으로 떠나지요.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붙잡힌 윤봉길 의사는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2월19일 24살의 젊은 나이로 숨져갔습니다.
중국 장개석 총통이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높이 평가했고 이를 계기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일본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를 떼 지어 참배하고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조선 침략 사실을 부정하는 망언을 접하면서 또다시 아시아 평화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는 이때에 윤봉길 의사의 목숨을 건 저항 정신을 되새겨봅니다./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