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궐 버들 푸르고 꽃은 어지러이 나는데 (宮柳靑靑花亂飛) 성 가득 벼슬아치 봄볕에 아양 떠네 (滿城冠蓋媚春暉) 조정에선 입 모아 태평세월 노래하지만 (朝家共賀昇平樂 ) 누가 포의 입에서 위험한 말을 하게 했나. (誰遣危言出布衣)” 위는 조선 중기의 시인 석주(石洲) 권필(權, 1569∼1612)의 시입니다. 때는 광해군 시절로 유 씨 가문이 득세하였는데 무려 일가 다섯이 동시에 급제하기도 하였고 이는 소위 `뇌물비리`에 의한 것이었지요. 이에 임숙영이라는 선비는 이러한 광해군의 행동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고 광해군은 격노하여 임숙영의 합격을 취소시켰습니다. 이를 개탄한 권필이 “궁류시(宮柳詩)”라고도 부르는 이 시를 지었고, 매를 맞은 다음 유배길에 오릅니다. 그러나 권필은 사람들이 주는 이별주를 폭음하여 이튿날 죽었는데 시 한편과 목숨을 맞바꾼 것이지요. 시에서 말한 궁궐의 버들은 유씨를 견준 것이며, 포의는 임숙영을 가리킵니다. 권필은 송강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삶을 마쳤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구용(具容)과 함께 전쟁을 해서라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강경한 주전론을 펼쳤지요. 또 권필은 아첨배 이이첨(李爾瞻)이 가깝게 지내기를 청했으나 거절할 정도로 명분에 분명한 선비였습니다. 권필의 무덤은 지금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상감천마을에 있습니다. 권필이 죽은 지 400년이 지난 지금 권필의 기개가 그리운 것은 왜일까요?/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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