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TV조선 미스트롯 1위를 차지한 `트롯 여왕` 송가인(34세)과 김정호(34세로 1985년 요절)가 `미스미스터트롯` 가황대결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1970년대 특유의 창법으로 이름 모를 소녀 등 히트곡을 낸 김정호와 송가인의 공통점은 국악(판소리)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가수 김세레나는 지난 8월17일 KBS1 ‘아침마당’에서 “송가인 등이 다 국악을 했다. 국악을 해서 성량이 풍부하고 아무 노래나 자유자재로 부를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다 천재들이다”고 말했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 왕중왕 김용임도 국악을 배운 가수다. ‘국악가요 가수’들이 이렇게 새로운 트로트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오장육부를 뒤트는 듯한 처절함과 애연함으로 한(恨)을 실어 지르는 창법을 구사한다.
김정호·송가인 열성팬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시대를 초월해 송가인·김정호가 부른 곡이 있다. 목포의 눈물(이난영·이하 원곡 노래가수), 대전부르스(안정애), 누가 울어(배호), 봄날은 간다(백설희), 불효자는 웁니다(진방남), 비내리는 고모령(현인) 등이다. 이들 노래 곡명을 유튜브에서 김정호나 송가인으로 각각 검색해 같은 노래를 비교해 감상한 후 국악 출신 `미스미스터트롯` 가왕을 가려보면 어떨까? 물론 김정호가 활동했던 1970~80년대와 송가인의 근년 취입 기술은 물론 음향 차이는 인정하고 말이다.
▶민요 창법과 판소리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
김문성 국악평론가는 민요 창법과 판소리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를 구분해 준다. 김 평론가가 `시사IN`에서 펼친 주장을 들어보자. 송가인과 유지나처럼 판소리 창법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가수로는 ‘그녀와의 이별’과 ‘멍’을 부른 김현정이 있다. 한 호흡으로 쭉 밀어내는 통성 쓰임새가 느껴질 것이다. 김현정은 판소리 흥보가를 배운 이력이 있으며, 단전에서부터 소리를 끌어내 시원하게 지르는 기술의 달인이다.
창법과 발성상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과 음 사이를 오르고 내릴 때 발생하는 장식음 처리 방법, 비음과 목을 사용한 발성 정도에서 비교되는 국악 창법과 가요 창법에 귀가 열리려면 해당 가수의 노래를 집중해서 들어봐야 한다.
다 같은 국악 전공자인데 김용임은 송가인이나 유지나처럼 지르고 찌르는 창법을 많이 쓰지 않는다. 국악이지만 판소리가 아니라 민요를 배웠기 때문이다. 김용임은 민요 창법을 쓴다. 민요 창법과 판소리 창법은 많은 차이가 있다. 민요 창법 트로트는 판소리 창법 트로트에 비해 앵기는 맛은 덜해도 질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송가인과 함께 국악가요를 널리 알린 송소희는 엄연히 말하면 트로트 가수는 아니다. 전형적인 민요 목을 쓰는 민요 소리꾼이다. ‘배 띄워라’ 같은 신민요 감상을 추천한다. 송소희는 초등학교 시절 KBS1 전국노래자랑에서 민요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묻는 국민MC 송해에게 "민요는 흥(기쁨)과 한(슬픔)을 동시에 담아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당차게 던져 주목을 받았다.
▶‘뽕짝’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흔히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하는데 뽕짝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2박자 계통인 트로트를 양풍으로 반주할 때 ‘쿵짝 쿵짝’ 하는 소리가 마치 ‘뽕짝 뽕짝’처럼 들려 이를 뽕짝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까지는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굳이 ‘쿵짝’ 대신 ‘뽕짝’으로 부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또 다른 설로는 ‘일본(本/뽕·일본 지칭)+작(作·노래)처럼 ‘일본 것’이라는 의미로 낮춰 부른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론가 박용구는 ‘일본+짝(덩이, 짐짝, 게다짝)’처럼 일본의 유행가를 비꼰 것이라고 했다. 어느 설이든 모두 일본 음악과 관련 있는 것으로 1960년대 이른바 ‘왜색문화’ 배격 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표현이다. 따라서 가급적 ‘뽕짝’이라는 속된 말 대신 ‘트로트’ 혹은 ‘유행가’를 쓰기로 하자.
▶우리만의 것에 목숨 건 김정호의 소리는 어디로 흘러갈까
"의사는 내게 더 이상 노래를 부르면 죽는다고 경고했지, 허나 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되레 죽을 것 같아. 남은 열정을 모두 국악에 바치겠다."
폐결핵 도중 `하얀나비`가 되어 저 세상으로 가기 직전까지 노래, 그것도 국악을 손에 놓지 않았던 김정호의 말이다. 병이 악화돼 병원에 실려갈 때도 꽹과리를 병실까지 가지고 들어갈 정도로 그를 미치게 만들었던 국악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만의 것, 우리만의 맛, 우리만의 흥,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제서야 비로소 찾은 느낌"이라고 털어놓은 김정호의 우리만의 국악은 어떤 느낌일까?
1985년 34세로 요절한 김정호의 대표곡 `하얀나비`는 `궁상각치우`라는 국악 음계로만 작곡을 했을 정도로 남도 판소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노래다. 남도민요와 판소리 창법으로 부르는 김정호를 이윤선 평론가의 주장을 들어보자.
김정호의 소울 창법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우선 소리를 꺾는다. 곧이 내지 않고 밀어내거나 흔들거나 꺾는 활용을 말한다. 민요나 판소리에서는 이를 타루친다고 표현한다. 이들 모두 음의 장식, 즉 시김새의 범주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판소리에서는 발바리성이니 노랑목이니 해서 금기하던 창법들이다.
그러나 전남 진도 출생으로 스승인 `강송대 남도민요` 명창인 송가인과 열 살 천재 김태연 등은 이 창법을 절묘하게 활용한다. 어깨를 들어 올렸다가 탁 내리치면서 첫 음에 강세를 준다. 뱉어냈다가 이내 소리를 삼킨다. 불필요한 시김새를 활용하지 않는다. 소리의 낭비가 없다. 상청에서는 마치 판소리가 그러하듯 통성으로 내지른다. 김정호가 구사했던 한국식 소울 창법이다.
적어도 김정호의 노래는 판소리나 민요 창법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방식으로 독해돼야 한다. 실제로 그를 발라드 문법의 포크·팝 계열 뮤지션이 아니라 육자배기 민요 계열의 남도창 혹은 남도 트로트 계열의 뮤지션으로 묶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은 소리를 온 몸에 실어낸다. 목청으로만 하는 노래가 아니다. 흉중의 심호흡을 토해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온 몸으로 한다. 한 몸 불살라 노래한다. 김정호 노래는 구슬프다. 울음의 연대기라고나 할까. 이 울음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흘러갈까.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