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듯이 날씨는 화창하고 기승을 부리던 동장군의 위세도 한 풀 꺾였다. 도로변 화단에 조경을 위해 심어둔 연산홍 마른 가지에 달린 잎은 제법 녹색으로 변해 가지만 미련 때문인가? 정 때문인가?
담장에 기댄 잔설이 미처 떠나지 못한 학교 마당엔 아직도 겨울이 남아 있다. 졸업한지 40년도 더 넘어서 전교생이 77명이라는 조그만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 졸업생이 7명인데 여학생은 한 명도 없단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강당 앞자리 7개의 의자에 앉은 주인공들은 제법 의젓한 티가 나고, “즐거운 배움과 꿈이 있는 행복한 작은 학교”라는 선생님들의 방침 교육 방침 때문일까 줄지어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있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눈동자가 또렷하고 표정들이 밝다.
도시 학교에 가면 안경을 쓴 아이들이 태반에 가까운데. 안경을 쓴 아이는 어쩌다 눈에 뜨일 정도로 적어서 역시 자연과 더불어 자라는 아이들의 눈 건강이 도회지 보다는 훨씬 더 좋은가 보다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 본다.
빛나는 졸업장이라고 했던가? 졸업장을 수여하는 교장선생님 뒤편으로 비쳐지는 영상물에 졸업생들의 사진과 장래 희망, 후배들에게 남기는 이야기들이 졸업장을 받는 아이들의 순서에 따라 비쳐지고, 이를 보는 후배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하기만 하다. 장날에 장꾼보다 풍각쟁이기 더 많더라는 옛말로 비유를 하면 참석하신 분들께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어찌하랴 현실이 그러한 걸. 부모님들과 하객들이 졸업생의 세배는 넘는 인원이 자그마한 강당에 열기가 넘치게 한다.
다다익선일까 졸업생 한 사람이 네 번씩 상을 받고, 모두가 장학금을 받는다.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서란다. 상장과 장학증서를 주는 이들과 받는 아이들이 함께 마주 보고서서 서로 주고받는다. 5학년들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도화지에 물감으로 칠하고 쓴 상장을 선배들에게 준다. 개그상, 야구상, 배려상, 곤충 사랑상, 상장이 다채롭다.
졸업식장은 조그만 축제장이다. “정 나눔의 시간”이란다. 2학년 꼬마들이 고사리 손으로 만든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1학년 꼬마들은 손으로 만든 꽃을 형, 오빠들의 가슴에 달아준다. 3학년들의 축하 댄스공연에 이어서, 4학년들이 부는 아카리나와 손에 든 조그만 종으로 반주를 하는 앙상불 공연이 깜찍하고, 5학년들로 이루어진 난타 공연은 솜씨가 제법 무르익었다. NG 영상 모음에 남발하는 선생님들의 실수에 손뼉을 치며 웃고 떠들던 아이들도, 정작 다정하고 사랑이 가득한 선생님들의 송별 인사가 시작되자 제법 숙연해 진다.
졸업생들의 활동 영상이 이어진다. 계절학교와 체험학습, 통기타 교실, 공개수업, 야영, 수학여행, 운동회, 학예회. 그래 애들아 좋은 추억 많이 많이 그리고 고이 간직하거라. 졸업하는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키워주신 부모님,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께 큰 절을 올리고 감사의 말씀과 후배들에게 남기는 인사를 하는 시간, 웃음기 사라진 얼굴들이 저마다 진지하고, 울먹이느라 인사말이 길어진다. 졸업식 노래는 가요 더 넛츠의 `우리다시`다.
함께 했었던 너무 따스한 기억
다시 돌아보면 소중했던 추억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아름다웠던 우리의 추억 기억해
노래를 합창하는 재학생들의 목소리는 제법 크게 들리는데 졸업하는 아이들의 손은 자꾸 얼굴로 간다. 그래, 애들아 이러한 이별도 너희들이 장차 자라면서 자주 자주 겪고 이겨내야 하는 아픔이란다. 지난날들을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소중하게 기억하렴.
졸업식은 아이들도 그들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도, 그리고 지금껏 정과 성을 다해 가르쳐 오신 선생님도 모두가 영광되고 축복받을 자리이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6년을 자라오다 더 큰 세상을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하는 7명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교감선생님의 영상 인사가 새삼스럽다. “ 애들아, 창공을 나는 독수리 같이 높게 그리고 멀리 너희들의 꿈을 펼쳐라.” 그리고 너희들이 영상 인사에서 당당히 이야기 했던 그 꿈들을 모두 이루려무나./정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