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앞길을 내다보고 언행을 해야 한다. 생각대로 다 토해내고 처신했다가 후일 그것이 빌미가 되어 언행에 심한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하고 양보가 필요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좀 배웠다는 지식인들에겐 이런 자세가 더 필요하다. 윤창중이란 사람이 있다. 입장은 달랐지만 그의 글을 읽을 때, 또 그의 말을 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시원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솔직히 부러울 때도 있었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패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저런 패기가 언제까지 갈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다. 나는 윤창중이 전문 언론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인수위 대변인으로 발탁되고 그에 대해 오고가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사림이었다. 그는 정치 쪽과 언론 쪽을 꽃놀이패 두듯 왔다 갔다 한 사람, 즉 폴리널리스트(Politics+Journalist)였다. 그것도 극우의 관점으로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는…. 그가 언론사를 그만 두고 `칼럼세상`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신문에서 하지 못했던 말로 자기 블로그를 도배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 블로그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오늘 뉴스에 그가 자신의 블로그 `칼럼세상`을 폐쇄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그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글은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또 그것을 늘 의식하면서 써야 한다. 내가 그의 글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글에 대한 책임성 문제 때문이다. 그는 이 점에서 제로에 가까운 글만 양산해냈다. 그가 쓴 글은 객관성을 상실하고 있었으며, 소수의 무 개념 극우 세력 외에는 공감하지 못할 글이었기 때문에 그냥 백안시(白眼視)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가 휘갈겨 써댄 글로 인해서 대통령 당선자의 눈에 들었고 마침내 인수위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맡을 수 있었으니까. 정치판에 기웃대던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까. 그가 보수 정권에서 한 자리 차지했을 때, 양산해 낸 무책임한 글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윤창중 같은 사람을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배운 것을 왜곡해서 시세(時勢)나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것`을 곡학아세라고 할 때, 그 만큼 이 사자성어에 부합하는 요즘 인물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윤창중이 대중의 주목을 끌 만큼 유명세(有名稅)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인수위 대변인에 발탁된 것은 곡학아세의 글이 기여한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말이다, 나 같으면 그런 자리를 꿰찼다고 해서 온갖 막말과 험담으로 도배되어 있는 개인 블로그 `칼럼세상`을 폐쇄하지 않겠다. 그 블로그에 올려진 글이 그를 인수위 대변인에 앉게 한 일등 공신이니까. 나 같으면, 죽어도 나의 주장과 신념이 옳으니까 절대 굽힐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겠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도 그대로 유지하겠다. 권력 앞에서는 사람이 나약해지는 법이다. 윤창중이 그런 생리를 몰랐을까. 몰랐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하다. 만약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자중해야 옳았다.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했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어느 쪽으로 보든지 윤창중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다. 그를 대명천지 21세기의 돈키호테호테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것이 될까. 나만의 생각이면 좋겠다. /이명재 목사 · 김천 덕천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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