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현상에 대한 이해는 수학이나 논리학과 같이 연역적인 방법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사회과학처럼 귀납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정책은 일반적으로 귀납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하게 되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문제는 정책 이슈가 된다. 정책이슈는 다양한 논의과정을 거쳐 정부에 의해 정책으로 결정된다. 정책과정에서는 정보수집과 분석의 합리적 과정이나 서로 다른 이해를 조정하는 정치적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문화나 관습과 같은 제도적 특성이 반영되기도 하고, 자원의 제약이나 기술의 한계 등도 반영된다. 결국 현실의 틀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요소가 개입되는 귀납적 논의를 거쳐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법의 논리는 다소 다르다. 법은 한번 제정되고 나면 그 법의 적용과 해석은 연역적인 방법을 따르게 된다. 헌재 결정의 당위성과 정책의 비효율성 최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정책영역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행정수도이전, 새만금사업, 종군위안부, 재외국민투표와 같은 많은 정책이슈들이 헌재의 판결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재외국민투표의 예를 보더라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참정권이라는 기본권 때문에 아무리 현실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재외국민도 국민인 이상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었다. 2007년 6월 28일 헌재가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제한한 것을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고 더 나아가 2008년 12월 31일까지 공직선거법 입법개선 시한을 제시하자 이는 정책이 되어 정부는 이를 집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연역적 판단은 정책집행의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법은 법리만 고민하지 정책집행의 효율은 고민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초로 실시된 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해외주민 투표를 위해 엄청난 인력과 예산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결과는 예상유권자 약 2.5%만이 투표참여라는 저조한 결과를 나타냈다. 우리 사회는 정답을 미리 정해 놓고 정책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명분과 당위를 강조하는 문화적 전통 때문에 귀납적 논리보다는 연역적 논리에 더 매료되는 것 같다. 따라서 여론을 독점하는 정치집단이나 이익집단이 연역적 논리로 정책이슈를 제기하면 현실의 어려움을 들어 반론을 펴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반값등록금의 당위성도 설득력은 있지만 정책을 심도 있게 분석해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은 지나치게 난립되어 있다. 부실한 사립대학은 등록률이 30%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교수 숫자는 동일한 학과의 경우 우수대학의 삼분의 일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등록금의 수준은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현재 80% 가까운 대학진학률이 오히려 청년실업문제를 가중시키고 취업과 구직의 미스매치를 심화시킨다고도 한다. 사회의 종합적 인력관리의 측면에서 보면 부실 사립대학의 구조조정이 오히려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근본적 현실 문제는 뒤로 하고 정부가 반값등록금 정책에 얽매어 세금으로 반값등록금에 해당하는 예산을 대학에 지원하게 되면 부실대학의 연명에 도움만 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새 대통령은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부터 풀어야… 정책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보다 심각한 사회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무상급식이나 청년실업 문제보다 연금도 없이 조기퇴직하는 중년가장으로 인한 중산층 붕괴가 더욱 근본적인 사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크게 이슈화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더욱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문제보다 솔깃한 문제를 제기하고 당위론적 판단으로 정책에 접근할 때 이는 포퓰리즘이 되거나 빈 공약(空約)이 되기 쉽다. 이제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던 우리 사회에서 근본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과연 무엇인지를 선거전략이 아니라 우리 삶을 오년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인수위 과정부터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이다./염재호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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