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필자는 유학의 학문관과 서구과학의 학문관의 차이는 두 사상의 자연관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과학 사상의 원형을 창시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이미 자연에 대한 대상적 과학적 인식을 하기 시작하였다. 데모크리토스는 이미 물질이 원자로 구성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현대의 과학은 데모크리토스가 가진 물음을 넘어 원자에 대한 해명을 넘어 원자의 내부세계를 훤하게 밝히기 시작한 지 오래다. 분자와 원자,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 양자와 미립자, 세포와 유전자 등의 개념들은 모두 대상에 대한 분석적 인식을 중시하는 서구과학의 성과물이다. 현대인들은 과학의 성과에 기초한 현대 과학문명의 덕분에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한편 자연 파괴로 인해 지구 생태계 전체가 공멸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철학은 자연을 대상화하여 인식하기보다 마음을 비우고 관조하기를 좋아하였다. 창조적 자연과 함께 살며 자신 안에 있는 자연의 원리를 실현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자연은 인간의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근원이자 목적이었다. `태극도`와 `태극도설`을 지어 성리학을 기초한 주돈이(周惇頤, 1017~1073 호는 濂溪)의 “성인은 자연을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을 희망하며, 학자는 현인을 희망한다(聖希天, 賢希聖, 士希賢)”는 말은 유학의 학문적 지향을 잘 설명하고 있다.
창조원리를 성덕(盛德)이라 한다면…광대한 세계는 대업(大業)일 것
동아시아 사상의 원형은 `역(易)`이다. `역`에는 기독교의 `성경`에서와 같은 우주창조의 신화가 없다. `역`은 자연의 바깥에 있는 초월적 창조자를 설정하지 않는다. `역`에서는 자연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를 도(道)라고 설명하고 있다. 도는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가운데 자신을 확대하며 양은 하늘을 이루고 음은 땅을 이루며 하늘과 땅이 교감하여 생명을 낳게 된다고 한다. 자연의 생성과 변화를 도의 변화로 이해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끊임없이 변화와 생성을 하면서 항상 새로운 창조의 원리를 도의 성대한 덕성이라고 하며, 생성된 광대한 세계를 도의 위대한 사업이라고 한다.
자연을 형이상의 진리인 도의 성대한 덕성과 위대한 사업의 양면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유학의 자연관의 기초를 이룬다.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라고 말한다. 그것을 계승한 것이 선이며,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이룬 것이 본성이다. … 인에서 드러나고, 작용 가운데 간직된다.
만물을 고무시키지만 성인처럼 근심하지 않는다. 성대한 덕성과 위대한 사업이 지극하다. 부유하게 많은 것을 위대한 사업이라고 하며, 날로 새로운 것을 성대한 덕성이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顯諸仁, 藏諸用,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 盛德大業至矣哉. 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 자연을 물질적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대한 덕성을 통하여 무한한 사업을 전개하는 생명의 세계로 이해한다. 자연의 현상을 성덕의 실현으로 이해하는 자연관은 인간 이해로 이어져 유학의 학문관과 수양론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군자의 진덕(進德)과 수업(脩業)은 수양론의 두 기둥
성덕과 대업의 자연관은 인간 이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천지는 인간에게 본성을 부여하며 그 본성의 실현을 통하여 인간은 무한한 사업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위대한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대한 덕성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덕성과 사업은 상호의존적인 것이기 때문에 덕성과 사업의 동시 수양이 필요하게 된다.
자연의 성덕이 자연 창조의 원동력인 것처럼 인간의 덕성도 인간 사업의 원천이 되는 창조성이다. “군자는 덕을 진척시키고 업을 닦는다. 충과 신은 덕을 진척시키는 것이며, 말을 닦아 진실함을 세우는 것은 업을 닦는데 머무는 것이다.(君子進德脩業. 忠信, 所以進德也, 脩辭立其誠, 所以居業也.)” 공자가 지었다고 전하는 건괘의 「문언(文言)」에 나오는 말로 이는 수양론의 두 기둥이다. 자연과 인간의 내재적 원리와 외적 실현을 동시에 중시하면서 내면적 덕성의 축적에 기초한 외적 삶의 확대는 유학적 삶의 특성이다.
과학을 통하여 대상적 지식이 확대되는 것 자체는 자연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지만 객관적 지식의 중시로 말미암아 자연의 내재적 질서와 인간의 심성 세계에 대한 무관심과 허약화를 초래한다면 이는 과학주의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주의의 만연과 주체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인류가 삶의 방향을 상실한 이 시대에 유학적 자연관과 인간관, 그리고 여기에 기초한 수양적 학문관에 대한 연구는 시대적 요청이다. /이광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