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회장 김인숙)`은 올 추석을 맞아 연례행사로 오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보름간 왜관역 광장에서 제5회 왜관역전시화전을 연다.
제5회 왜관역전시화전에는 구상 시, 회원 시, 김주완 지도교수 시는 물론 지역 소도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전국의 유명 시인들이 대거 참가함으로써 시화전을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성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구재기(충남 홍성), 권숙월(김천), 김종섭(경주), 문인수(대구), 박찬선(상주), 이승하(서울), 이영춘(춘천), 이하석(대구), 조영일(안동), 조재학(상주), 허형만(목포) 등 11명의 전국단위 중견시인들의 신작시를 왜관역 광장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상 시인의 존재론적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탄생한 `언령`은 칠곡군 왜관읍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생적 시동인이다.
특히 구상문학관 개관 10주년인 10월 4일을 전후해 열리는 이번 언령시화전은 더욱 뜻깊은 시화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경부선 대구∼대전 사이의 거점역으로 활기가 넘쳤던 왜관역 광장에서 개최되는 시화전이라는 것도 의미를 더한다.
김인숙 회장은 이번 시화전은 어떤 기관·단체의 지원 없이 전액 회원들의 자비로 열리는 것을 강조했다. 또 형식과 타성으로 치우치기 쉬운 개막식 행사는 생략하는 과단성을 보인다. 고향 땅을 밝는 첫 왜관역 광장 시화들이 한가위 귀성객 등의 마음의 창에 한 점의 그리움으로 걸릴 것이다.
간이역에서 내리다(초대시)
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은 애처롭고
이 세상 모든 애처로운 것들은 아름답다
간이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단 둘
저 허리 구부정한 사내의 낡은 점프에서 풍기는 냄새가
메주나 청국장을 닮지 않았는지
저 꼬부랑 할머니의 연분홍색 보따리에서 풍기는 냄새가
멸치나 노가리를 닮지 않았는지
낡아가는 것들이 다 누추하지는 않지만
여기 이곳에서의 삶은
간이역 근처 점방의 과자 부스러기처럼
사먹는 사람 없어서 결국은 버리게 되는 것
젊은 사람은 내리지 않고 언제나
낡은 사람만 내린다
희끗희끗하지 않으면 쭈글쭈글한
선로 옆 코스모스에 매달린 이슬만 초롱초롱하다
김천에서 대구까지 아홉 개 역을 쉬었지
김천-대신-아포-구미-사곡-약목-왜관-연화-신동-지천-대구
열 번째 대구역까지 가는 동안
두세 번은 꼭 쉬어 빠른 열차를 통과시키고 떠났었지
하염없는 기다림
간이역은 기차를 기다리며 늙어가고
기차는 늘 간이역에서만은 서둘러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