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툭하면 여론몰이가 대세를 이룬다. 여론은 결코 정의도 정견(正見)도 아닌, 어쩌면 천박한 대중인기영합주의의 부산물이다. 한 중앙지에 실린 중고생 여론조사를 보면 발표할 가치도 없는 진상에서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6·25전쟁을 북의 남침으로 아는 청소년은 49%밖에 안 되고, 우리나라의 주적은 미국이라고 대답한 것이 51%나 된다. 은혜와 원수도 모르는 철부지가 전체 조사학생의 절반이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어린 청소년들이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한 데는 애국심이 희박한 학부모와 편향된 교육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미숙한 학생들이라서 조금만 부추겨도 못할 짓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존하는 역사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는 두 가지 기록을 지니고 있다. 질적으로 최고(最高)요, 시간적으로 최고(最古)의 값진 역사기록물이다. 단재 신채호는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몰아 부치고, 묘청을 최대의 자주 애국자로 미화했다. 특수한 시대에, 애국심을 부추기기 위해서 한 사론(史論)이라고 봐줄 수도 있으나, 서경천도는 역사의 진실이 아니라, 서경파들의 집권욕이 애국심을 앞선 평범한 정권획득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 김부식은 경주 김씨로써 신라를 계승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균형 잡힌 역사보기로 볼 수 없다. 김부식을 신라에 편중했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정확한 판단이 아니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삼국사기의 백미라고 볼 수 있는 열전(列傳)에, 김유신 장군의 열전이 3국 열전 전체 분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것을 두고, 김부식을 `신라옹호의 전도사`로 착각하는 빌미로 보는데, 양적인 것을 문제 삼는 것은 단견(短見)이요, 김부식은 위대한 역사학자로 삼국통일의 큰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일본서기`를 꼭 보아야 한다. 분량으로 봐선 삼국사기나 일본서기가 둘 다 헤비급이다. 일본서기에는 일본의 신라 침략사가 눈에 자주 보인다. 침해왕 때(3세기) 신라왕족 석우로는 일본인을 욕했다가 신라 서울에서 일본인에게 잡혀 화형을 당한다. 자주국가에서 어찌 그것도 서라벌 한복판에서 이런 무법이 자행 될 수 있겠는가? 볼모로 일본에 가있던 왕자를 구출하고, 박제상은 장렬하게 화형을 당하고, 치술령의 신화를 남겨, 후세인들의 가슴앓이를 도와줬다. 신라의 화랑도 수련코스가 동해안인 것은 `명산대천`에 연련해서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청소년 기동타격대가 출동, 순시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나서, `일본서기`엔 신라를 침범한 기록이 자취를 감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통해, 국토면적은 13만㎢로 늘어나고, 인구 450만 명의 튼실한 나라가 되므로, 연례행사 같은 일본인의 침략도발이 거의 은퇴공연을 한 것이다. 신라가 외세(당)를 빌려, 고구려, 백제를 무너뜨린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해서 안 될 야박한 일로 착가하는 이들을 더러 보는데, 신라가 삼국통일 위업을 이룩하므로, 비로소 우리 민족이 형성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삼국은 동족이 세운 국가가 아니다. 건국시기가 각각 다르고, 건국설화가 다른 것이 웅변적으로 다른 민족임을 증명하고 있다. 백제 의자왕의 잦은 신라 침범으로, 무열왕은 사위가 전사하고, 딸의 시체마저 백제군의 볼모가 되는 우환을 당했다. 648년 나․당동맹이 결성된 것도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을 막기 위한, 최후의 자구책이요, 정당방위인 것이다. 신라가 힘겹게 삼국통일을 완수하므로, 만주 땅을 잃어버리고 반도국가로 주저앉게 되었다고,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는 것은, 올바른 역사파악이라고 볼 수가 없다. 주변민족으로 중원을 차지한 나라는 예외 없이 100% 중국에게 망하여 동화되었고, 민족마저 사라지는 비운을 당했다. 거란, 여진, 만주족 등 중국을 지배한 이민족은 예외 없이 중국에 동화되어 자기문화는 차치하고 민족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여 민족이 최초로 형성되고, 신라문화를 그루터기로 하여 독자적인 민족문화를 꽃 피우게 된 것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싶으면,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꼭 읽고,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영원한 감동을 주는 `온달` 이야기도 삼국사기 열전, 고구려 편에 실려 있다. 옛 지명을 정확하게 알려면 삼국사기 지이편을 열어봐야 한다. 이제 우리도 삼국사기를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역사를 삐딱하게 보는 정신적 사팔뜨기가, 육체적 사시안보다 더 큰 불구자인 것이다. 역사를 바로 읽고, 바로 볼 줄 알아야 국가와 민족에게 밝은 내일이 있는 것이다./김시종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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