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다. 매스컴에서는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띠를 길한 해라고 하며 이번 해에 대한 남다른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십이지에서 용은 방향으로는 동남동, 시간적으로는 오전 7시에서 9시, 달로는 음력 3월을 지키는 방위신(方位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최근 젊은이들은 십이지 사상을 고루한 것으로 보고 서양의 별자리 관념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별자리를 논하는 것이 십이지를 운운하는 것보다 더 과학적이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 속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별자리보다는 십이지가 더 우리네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십이지는 우리의 연중행사 가운데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풍습 안에 스며들어 있다. 또한 여러 기물(器物)이나 유적 속에도 그 명칭이 나타나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는 우리들의 일상생활 자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월이라든가 명절, 이사 가는 날, 잔치하는 날, 제사지내는 날 등은 반드시 십이지와 관련이 있다. 여전히 우리 생활 깊숙이 살아 지속되고 있는 것이 십이지의 관념이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십이지가 유입되면서 무덤 속의 조각과 불교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토우형태의 조그만 십이지신상이 무덤 내부에 부장되거나 무덤 주위의 땅 속에 묻혀 방위신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가 십이지가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확립되면서 신장상의 모습으로 무덤 둘레의 호석(護石)에 직접 조각되기도 했다. 지금도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에 가면 호석에 조각되어 있는 십이지신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용은 십이지 중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동물이다.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인 용은 실존하는 동물들의 장점을 두루 갖추었다. 중국 고전 『본초강목』에 보면, 용의 형상은 아홉 동물의 부분을 따서 모은 것으로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의 귀(鬼), 목덜미는 이무기, 비늘은 잉어, 발톱은 독수리,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홉 구(九)는 양수 가운데 가장 큰 숫자로 다(多)와 무한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따라서 용을 단순한 개별적인 짐승의 조합이 아니라 여러 짐승을 융합시킨 통합의 정신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어령 선생은 서로 다른 짐승들의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조금도 어색함이나 위화감 없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용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동아시아 문화권의 용은 서양의 용(키메라)처럼 불화와 분쟁의 상징이 아니라 다문화를 창조해나가고 문명 간의 충돌을 막는 융합과 통합의 상징이라고 본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용은 바로 이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용은 변화의 상징이다. 춘분에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추분에는 땅으로 내려와 깊은 못 속에 숨는다.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며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다. 잉어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고, 선비들도 학문을 연마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등용문에 올라 용이 된다. 왕만이 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노력에 따라 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용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용이 여의주와 물, 비, 바람, 구름을 만나고 뿔이 나야만 승천할 수 있듯이, 사람이 출세하려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면 주위 여건이 맞아야 하고 노력이 따라야 한다. 새해가 흑룡의 해, 길한 해라고 가만히 앉아서 행운을 바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여러 가지 여건을 만들고 더불어 노력해서 우리 모두가 용이 되어가는, 용으로 승천하는 한 해가 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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