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님이 통일 부서를 맡으면 잘 할 것 같은데 한번 해봐라’라고 권유해 준 도반이 시간이 흐를수록 고맙게 느껴진다. 비록 일을 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고 배우는 것들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화 모란꽃이 활짝 피어있는 통일체육축전 초대장이 도착했다. 해마다 이맘때(가을)면 방방곡곡에서 이름도 가지각색인 체육대회가 열린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의 각종 동문체육대회, 지역의 이름을 걸고 펼쳐지는 경주들, 그리고 친선모임들이 주최하는 단합체육대회까지…. 그러나 이곳 남한에서 남북한 동포가 한자리에 모여 그것도 통일의 이름으로 체육축전을 여는 곳은 아마도 ‘좋은 벗들’과 함께하는 이 행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축전의 한마당이 펼쳐지는 날인데 전날 저녁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난감했다.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새터민들을 만나고 때로는 형사님들도 만나고 모란꽃 활짝 핀 소중한 초대장을 건네주고 포스트를 붙이고 나름대로 준비했는데 슬슬 걱정스러운 마음이 잠까지 설치게 했다. 비는 당일 아침에도 계속 내렸다.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한분 두 분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참석자들이 오기 시작했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많이 내리는 비속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먼 곳에서 와 주신 그 마음들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하늘도 남북한 동포가 하나 되는 날은 아는 모양이었다. 넓은 운동장 위로 햇살을 보내주셨다. 돌아가신 조상님과 두고 온 북녘의 가족들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합동차례를 지내는 모습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함께 어루만지고 통일의 그날을 그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어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새터민들과 함께 밧줄당기기에 참석했다. 청팀 백팀으로 나뉘어 간간이 내리는 부슬비를 맞으며 하늘을 찌르는 응원 속에서 우리는 온힘을 다했다. 그곳에는 남도 북도 없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어떤 장애도 없었다. 서먹하던 느낌은 찾아볼 수 도 없었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와 환호와 하나 된 느낌만이 충만했다. 우리들 마음 깊이 녹슬어 있었던 한 민족의 기운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남과 북은 없었던 것처럼 함께 노래하고 달리고 춤추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느낌 이런 순간이 통일 된 날의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소박하게 준비해 온 점심을 함께 나눌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새터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대구를 출발할 때 약간의 서먹함과 낯설음 때문인지 활동가는 활동가들끼리, 새터민들은 그들끼리 그렇게 앉아서 온 것이 영 마음에 걸렸었는데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나도 술 한 잔 주세요” 하며 그들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같은 민족 우리 이웃인데도 불구하고 이방인 존재로 여겨지는 우리들의 마음을 참회하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많은 수다를 떨었다. 행복했다. 내 마음의 금이 사라진 것을 감사했다. 마지막 전국 장기자랑 시간에 사회자가 출연자 한분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함경도에서 왔습니다.” 또 한분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 것 같다. “고향이 어디세요?” “서울에서 왔어요.” 어린이가 있었다. “어디서 왔니?” “대한민국에서 왔어요.” …. 그들은 모두 자유를 찾아 이곳으로 온 새터민들이다. 그들의 고향은 함경도도 되고 서울도 되고 때로는 대한민국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남한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통일된 날, 체육축전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축전의 마당에서 그 감동을 느껴볼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 드려 본다./글 · 신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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