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고 희망을 안겨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어떠한가?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기는커녕 되레 눈물이 쏟아지게 만들고 있다. 아니 이제 흘릴 눈물조차 없어 헛웃음까지 나올 지경이다.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납니다”라는 국민 코미디언 고 이주일의 말이 떠오른다. 1996년 고 이주일 전 국회의원은 당시 통일국민당 재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같이 정치를 코미디에 비유하는 유명한 불출마의 변을 남겼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문제는 대통령뿐 아니라 대다수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초심을 지우고 하나같이 자당(自黨)의 이익과 자신들의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는 데 있다. 이들의 이해타산에는 아예 국민은 없고 있다하더라도 자신들의 차기집권이나 당선에 도움이 되느냐를 먼저 따지기에 급급하다.
1992년 타계한 이재형 전 국회의장은 정계 은퇴하는 기자간담회에서 "한마디로 정치란 무엇입니까”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다 국민을 속이는 짓"이라며 고해성사 같은 대답을 해 주목을 받았다.
당선되기 전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유권자들에게 `하늘의 별까지 따줄 것`처럼 얘기하다가 당선되면 `하늘의 별을 어떻게 따느냐`며 안면을 바꾸기 쉽상이다. 이렇게 국민에게 한 약속을 어기는 `정치꾼`을 계속해서 뽑아주는 국민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유권자와 국민을 기망하는 정치꾼은 선거를 통해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후보자의 공약과 정치철학을 검토하지 않은 채 소속 정당이나 공천에 따른 당선가능성을 보고 `묻지마 투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투표가 아니라 지역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저해하는 `민주주의의 악`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투표자인 국민이 져야한다. 국민 스스로 사기치는 `정치꾼`을 뽑아 놓고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이 말은 누가 정치를 해도 마찬가지라는 정치적 허무주의자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의식을 환기해주는 명언으로 자주 사용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투표 독려 차원에서 이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저질 정치인들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유권자들이 심판해야 한다"며 후보자나 칼럼니스트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즉, 당선되자마자 주민들은 뒷전으로 하고 오로지 자신이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 데만 힘쓰는 `정치꾼`이나 시정잡배(市井雜輩) 같은 자들이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표로써 신성한 참정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투표해야 저질스러운 인간의 지배를 막는다"는 말로 축약된다. 루이스 라모르는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투표하지 않는 자, 불평할 권리도 없다"고 꼬집었다.
상당수 유권자는 스스로 입후보자의 공약과 능력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사표(死票) 방지를 위해 당선가능성이 높은 특정 정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가 낭패 보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낭패를 계속 당하면서도 또다시 `함양 미달`의 후보를 찍어주는 유권자들에게 있다. 투표할 때만 머리를 숙였다가 당선되면 주인인 국민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 놓고 개·돼지 취급하는 정치꾼을 언제까지 뽑아야 하는가?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뉴데일리 칼럼에서 "요즘 국민의힘 돌아가는 꼴을 보니 국민의힘, 대통령실, 자칭·타칭 실세란 사람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공천과 재선에만 관심이 있을 뿐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게 또 한번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윤핵관 호소인`(윤핵관은 아니지만 나도 윤핵관이라고 스스로 호소하는 사람)을 겨냥한 일침으로 보인다.
류 전 주필은 이어 "윤 대통령은 취임사와 광복절 기념사에서 밝힌 ’자유의 변혁‘을 실현하기 위해 그의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가치관과 철학, 역사관을 세워야 한다. 문제는 그것을 국민의힘 사람들이 아주 무관심하게 건성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 이대로는 안된다. 출세주의자들에게 금배지 하나 달아주자고 윤 대통령이 그토록 당하도록 했나"라고 쓴소리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며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 치도 국민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국민의 뜻을 잘 받들겠다. 저부터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지방’과 ‘지역’의 발전방안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지방민과 지역민은 윤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6대 국정 목표 중 하나로 내건 윤 대통령의 `지방시대, 지역발전이 국가 발전`이란 모토는 어디로 갔는가?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올해 31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지방정부는 `지방자치단체`라고 한다. 시·군·구는 기초지방자치단체, 시·도는 광역지방자치단체로 명명한다. 행정기관이 어떻게 단체인가? 단체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을 말한다. 순수 우리말로 `동아리`다. 단체는 사회단체나 시민단체에 사용하는 단어다. 명칭부터 잘못됐다. 하루빨리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바꿔야 한다. 지방을 무시하고 자기들이 권력을 계속 장악하려는 중앙집중식 관료의식이 초래한 부산물로 보인다. `권력과 사랑은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 독점하는 속성이 있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오늘날 지방자치제는 중국 주나라 때 시행한 봉건제보다 못한 것 같다. 현행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은 당시 제후나 영주의 권한에 훨씬 못미치기 때문이다. 주나라 봉건제는 중앙 정부가 지방에 직접 행정관을 파견해 통치하는 중앙집권적인 군현제(郡縣制)와 달리 중앙 정부는 수도와 일부 요충지만 직접 통치하고 다른 지방에는 제후나 영주를 임명해 다스리게 하는 제도였다.
현행 헌법에 지방자치와 관련된 내용은 제8장 제117조와 제118조 두 조항에만 명시돼 있다. 헌법 제8장 제117조에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제118조는 "지방의회의 조직, 권한, 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와 관련한 주요 내용 대부분은 법률에 위임하고 있어 중앙 입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명확한 지방분권을 위해 헌법 제1조 3항을 신설, `대한민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란 명칭은 이제 그만)로 구성되는 지방분권형 국가임`을 천명해야 한다. 또 자주재정권, 자치입법권, 자체인사권 등 3대 권한도 지방정부가 갖는다는 내용도 넣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을 포함해 수도권으로 몰리는 국가 재정이다. 중앙은 예산이 남아돌아 가는데 지방은 곳간이 비어 허덕이고 있다. 지방자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주재정권` 확보를 위해 지방교부세율과 지방소비세율을 인상하고, 지방소득세도 현재보다 2~3배 늘려야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중앙의 권한이 이양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을 뽑아준 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자주재정권 등이 확보될 수 있도록 관심은 기울여야 하리라.
산업연구원(KIET)의 2022년 보고서대로 우리나라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총인구 50.3%, 청년인구 55.0%, 일자리 50.5%, 1000대 기업 86.9%가 쏠린 현실에서 지방과 지역의 쇠락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죽어가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극약처방을 내놨다. 노 전 대통령의 최대 치적은 지방 분권과 국가균형발전 도모에 있다.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국가균형발전을 국정의 최대 지표로 삼았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해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대구경북, 부산경남, 광주전남, 강원, 충북, 제주 등 10곳에 혁신도시를 세우고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했다.
노 전 대통령이 국가 재편 프로젝트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공공기관 등 153개 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한 치적은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가족 전체가 지방으로 이사하지 않고 당사자 몸만 오는 공기업과 공공기관 이전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일각에서는 수도권에 있는 일류 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수도권에 몰린 인구 등을 지방으로 분산시킬 수 있고, 천정부지로 오른 아파트값 등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지방의 인구감소와 쇠락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보다 더 암울한 현실은 죽어가는 지방을 살릴 수 있는 방법과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모든 분야에 퍼져 있는 수도권의 `암덩어리`로 위독한 지방이 편하게 숨쉬는 미래와 실낱 같은 희망은 오지 않는가?
추석 보름달처럼 밝고 풍요로운 소식을 독자들에게 전하지 못하는 어두운 현실을 정치꾼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