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면은 지난 6월 22일 낙화담(지천지)에서 쌍열비를 복제한 제2쌍열비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이상기 전 지천면장과 이필주 귀암종택 종손을 비롯한 광주이씨 문중, 이병구 지천면지편찬위원회 위원장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쌍열비(雙烈碑)는 임진왜란 때 권관 이심옥(1552~1616)의 부인 현풍(玄風)곽씨와 딸인 곽재기의 부인 광주(廣州)이씨 모녀의 순절(殉節)이 조정에 알려져 왕명(순조20년·1642년)으로 정려해 두 여인의 열행(烈行)을 함께 기리는 뜻으로 쌍열비로 명명했다.
이들은 칠곡군 지천면 신리 상지에 살았다. 부인은 평소 몸가짐이 엄정해 친척과 종들도 얼굴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임진왜란 때 뒷산으로 피신했다가 왜적들에게 붙잡히게 됐다. 왜병이 칼을 뽑아 위협하였으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다. 칼로 팔을 베어도 요지부동이라 허리와 등을 마구잡이로 찔러놓고 가버렸다.
부인은 더럽게 입은 상처의 간호를 거절하고 1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지천면 심천리 쌍열각(雙烈閣) 내에 세워진 쌍열비 비문은 응교(應敎) 이도장(李道長)이 지었다.
지천면지편찬위원회는 문화재 보존 발굴의 일환으로 지천면 심천리 쌍열각에 보존돼 있는 쌍열비와 똑같은 비석으로 제작해 낙화담의 의의를 기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에 쌍열비 복제비를 세운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낙화담(洛花潭)은 쌍열비 사연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낙화담이 있던 곳은 현재 지천면 신리 웃갓마을(경상도 칠곡도호부 상지면 상지리·上枝里·웃갓마을의 한자어) 뒤편 암석으로 된 산 아래로, 이 산은 산세가 바라(鉢)처럼 생겼다고 해 발암산(鉢巖山) 혹은 바래덤으로 불리웠다.
낙화담과 관련해 전해 오는 이야기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되는데, 세부적인 면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넓은 의미에서는 이야기가 모두 동일하다. 그 중의 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임진왜란 당시 마을의 여인들이 왜적을 피해 발암산으로 도망갔다가 왜병에게 발각되자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버릴지언정 왜병의 손에 더렵혀지지 않겠다며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이를 전해들은 후세가 여인들이 아름다운 꽃(花)처럼 떨어져(落) 내린 못(潭)이라는 의미로 `낙화담(落花潭)`이라 지칭했다고 한다.
낙화담은 1960년대 만들어진 지천저수지에 포함되어 현재는 그 모습을 찾기 어려운데, 지천청년협의회가 세운 낙화담비가 이 모든 사연을 안은 채 서 있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