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17만7천여명 동의, 20만명 넘으면 청와대 답변해야
칠곡군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를 비롯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가혹행위 혐의로 관련자가 줄줄이 구속된 가운데 지난 22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최 선수가 생전에 작성한 일기장이 처음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관련 ‘철인 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분야 인권 침해 청문회’에서 공개한 최 선수 일기장에는 "내 원수는 두 명 이상.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하는 등의 내용과 원수(가해자) 명단이 적혀 있었다.
최 선수 어머니는 이날 청문회 참고인으로 나와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최 선수 아버지 최영희씨는 "이 땅에 숙현이처럼 억울하게 당하는 운동선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최숙현법`을 꼭 입법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고 최숙현(23) 선수는 지난 6월 26일 새벽 부산 숙소에서 뛰어내려 꽃다운 나이를 마감했다. 최 선수는 목숨을 끊기 전 스마트폰 카톡을 통해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고 보냈다.
◆경주시청 폭행 관련자 고소·진정 시기에 일기 적어
최 선수는 질의응답 형식의 일기장에서 "나의 원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원수는 두 명 이상”이라며 “장윤정·김규봉·XXX·김정기(김도환 선수 개명 전 이름)·XXX”라고 적었다. 최 선수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한다. 기억에서도”라고 적었다. 또 ‘내가 아는 가장 정신 나간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 질문은 백번 물어도 똑같은 답”이라며 장 선수와 김 감독, 김정기·XXX 선수를 적었다. 또 다른 한 선수에 대해서는 “좀 바뀐 것 같기도”라고 했다.
최 선수의 3월 6일자 이 일기는 최 선수가 지난 1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경주시청을 떠나 부산시청으로 소속을 옮긴 후 지난 2월 경주시청 감독과 팀닥터, 일부 선배를 고소한 데 이어 지난 4월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에 신고하거나 진정서를 제출한 시기에 쓴 내용이다.
일기를 보면 최 선수가 얼마나 심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가하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 대목이다.
이날 청문회에는 고 최숙현 선수 핵심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안주현 전 운동처방사(`팀닥터`), 김규봉 전 감독, 장윤정 전 주장은 동행명령서 발부에도 끝내 불참했다.
◆"꿈에 나오면 악몽이라 생각할 만큼 두렵다"
최숙현 선수의 남자선배이자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도환 선수는 이날 국회 청문회에서 자신도 김규봉 감독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폭행 혐의를 부인했던 김도환 선수는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의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 김 전 감독과 안씨, 장 전 주장의 폭언과 폭행 사실도 진술했다. 고 최숙현 선수 가족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진심"이라며 "다른 말들은 직접 찾아 뵙고 하겠다"고 했다.
최숙현 선수 동료들의 김규봉 전 감독, 장윤정 전 주장에 대한 폭로도 이어졌다. 정모 선수는 “장윤정 선수가 최숙현 선수 멱살을 잡은 적이 많았다”고 했다. 또 김규봉 감독 등이 수차례 폭력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빵을 강제로 먹인 적도 있다. 쇠파이프로 폭행한 사실이 있다”며 “나도 폭행, 폭언을 당했다. 최숙현 선수가 말했던 ‘그 사람들’은 김규봉, 장윤정 선수를 뜻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편모 선수는 "(장윤정은) 자기 기분에 따라서 선수를 대했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폭행을 일삼았다. 선수들은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죄송하다고 해야 했다"며 "팀은 장윤정의 분위기 주도하에 돌아갔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장윤정이 꿈에 나오면 악몽이라고 생각할 만큼 두렵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장윤정 전 주장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장 선수가 지난 5일 경주시체육회에 낸 자필 진술서를 살펴보면, “두 얼굴의 안주현 처방사에게 속았다. 우리는 피해자다”라며 “2019년 뉴질랜드에서 안주현 선생이 (최숙현 선수를) 때리고도 김규봉 감독에게 ‘장 선수가 최숙현 선수를 괴롭혔다’라고 보고했다. 알고 보니 안주현 처방사는 최숙현 선수가 녹취한 느낌을 받은 뒤, 모든 정황을 ‘장윤정이 괴롭혀서 그랬다’고 꾸미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17만7천여명 동의, 8월 1일 마감
고 최숙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선수는 팀 내 가혹 행위로 고통을 받다 지난 6월 26일 부산 동래구 부산시청 직장운동부 숙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최 선수 지인들이 지난 7월 2일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7일 현재 17만7000여명이 동의했다. 이 청원은 8월 1일 마감된다.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20만명을 넘을 경우 청와대는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최 선수의 지인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경주시청에서 차마 말로 담아낼 수 없는 폭행과 폭언, 협박과 갑질, 심지어는 성희롱까지 겪어야 했다. 해당 폭력들은 비단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올렸다. 지인들은 “고 최숙현 선수가 공공기관, 책임 있는 단체에 도움을 청하였지만 모두 그를 외면했다”고 적었다.
최 선수가 소속됐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는 감독과 남·여 선수 각 5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최 선수가 숨진 당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엄마와 주고받은 카톡에서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등의 내용이 공개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수영에서 두각 드러내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 출생인 고 최숙현 선수는 경북체고 2학년(당시 18세) 시절인 2015년 7월 2015 하반기 국가대표 선발전인 ‘설악전국트라이애슬론대회’에서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최 선수는 당시 상반기 국가대표 탈락자 등과 국내 트라이애슬론 최강자들이 겨룬 대회에서 주니어 국가대표 여자부분 5인에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칠곡군 기산면 약동초등학교 1학년부터 수영을 시작해 지난 2009년 경북도 대표로 활약했으며, 6학년때 ‘전국동아수영대회’ 접영부분 금메달을 딸 정도로 수영에 타고난 소질을 보였다.
칠곡군 석전중학교 1학년부터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해 석전중 2학년인 2012년 ‘제41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여중부 금메달 획득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2015 뉴 타이페이 아시아트라이애슬론선수권 대회’에서 주니어 여자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최 선수는 경북체육중학교로 스카우트되면서 트라이애슬론에 본격 입문했다.
성실한 성품으로 기산면에서 농사를 짓는 최 양의 아버지 최영희 씨는 딸이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되자 당시 기산면 행정1리 마을회관에서 마을주민들을 초청해 점심을 대접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최숙현 양은 “올해 가장 목표로 하고 있던 국가대표에 선발돼 매우 기쁘다”며 “오는 9월 5일에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있을 ‘세계트라이애슬론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혔다.
약동초·석전중 시절 최숙현 선수를 지도했던 임종구 전 코치는 "최 선수는 초·증학교에 다닐 때 수영과 트라이애슬론 실력도 뛰어났지만 주위에서 공부도 잘 하는데 힘든 운동을 시키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업성적도 최상위권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칠곡군민들과 지역단체에서는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현수막을 거리에 내걸고 최 선수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이성원 편집국장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