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이 아무리 아우성쳐도 시끄럽지가 않고, 새들이 아무리 지저귀어도 요란하지가 않다. 푸르르 살아 오르는 성하(盛夏)의 수풀에서 매미들의 부르짖음도 한껏 푸르다. 앉아 듣는 매미소리는 바닷가에 앉아 듣는 파도소리와 같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이토록 마음 뺏기기가 처음이다. 가만히 보면 여름날의 모든 것은 `내가 최고야`를 외치며 최고의 생명을 들날리느라 한치의 양보가 없다. 눈치도 없다.
마치 우리들의 20대 무렵, 세상은 오직 정의감으로 푸르고, 나는 그 정의의 수호자가 되어 높은 하늘처럼 살리라, 우쭐우쭐 키대기를 하던 그날의 함성처럼 여름은 오직 의기양양한 개선장군이고 기고만장한 독불장군이다.
햇볕도 쨍쨍 날아온 화살처럼 박히고 시냇물도 솰솰 속살을 드러내며 사람들도 훌훌 맨살을 뽐낸다. 거침없는 이 당돌함이 여름을 마침내 폭발하는 생명의 활화산으로 만들고 만다.
나는 올여름을 가만히 음미해 보기로 했다. 휴가도 조용히 산천을 둘러보며 한발 물러나 지켜보기로 했다. 풍덩 여름 속에 빠지기보다는 곁에 서서 잔잔히 여름의 진면목을 훔쳐 보고 싶어졌다.
내가 여름 속에 빠져 있을 때에는 여름의 참모습이 이렇게 싱싱한 아름다움인 줄 몰랐다. 퍼드덕 뛰어오르는 생물의 몸부림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몰랐다. 이제 뒷모습을 보고서야 진짜 앞모습을 찾아내는 것일까? 언제나 흐르고 나서야 흘러온 그곳을 아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여름이 이토록 정겹고 싱그러운 것도 실은 나의 여름이 가버린 탓일 게다. 그 아쉬움의 그림자인 양 올여름의 그늘은 유난히 짙고 푸르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어야 진정으로 그것의 참모습을 아는 법이다. 아쉬움이 없다면 이미 그것은 멀리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기억되고 싶어한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 우리들의 살아 있음은 바로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여름의 실존도 이렇게 가슴 속 무성함으로 남으려는 이 몸부림인지 모른다.
나는 여름을 간직하며 살고 싶다. 저 오만방자한 기개를 데리고 함께 살아가고 싶다. 여름은 우리에게 이런 자랑을 마음껏 남기려는 듯 더욱 힘차게 몸부림을 하고 있다. 나는 뻗쳐오르는 생명의 활력 옆에서 가버린 나의 여름을 아쉬워하며 함께 그 몸부림의 파도를 엮는다.
여름은 아름답다.
무질서와 소란함이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여름은 오로지 자랑스럽기만 하다. 여름은 싱싱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이름이다.
/서경희 수필가 · 경북여고 ·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월간 `수필문학` 천료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 백화문학 회원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 正文문학상 수상
저서: 수필집 `장미와 안개꽃` 수필집 `비밀번호`
주소: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