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원화 3점 등 전시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일제강점기 지천면 출신의 월북 화가 이쾌대의 원화를 2월 6일까지 12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원화는 이쾌대의 `걸인(1948년작)`, 드로잉 `우리 집안 식구`, `해방공간 드로잉` 세 점이다. `군상` 시리즈 중 세 점은 복제작으로 전시되고 있다. 걸인은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에 이쾌대가 세운 성북회화연구소 인근에 실재한 인물이었다. 작품에 나타난 걸인은 단순히 헐벗은 걸인이 아니라 결연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강인한 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 측은 "해방과 혼란 속에서 민족의 희망을 이야기하려 했던 작가의 관점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라며 "이쾌대의 원화를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밝혔다. 이쾌대는 1913년 1월 칠곡군 지천면 신리 웃갓마을에서 태어나 신동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대구 수창초교로 전학, 이 학교를 졸업했지만 대구에서 그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휘문고보 재학시절인 1932년에 화단에 데뷔했고, 1934년 동경제국미술대학에 입학해 1939년에 졸업했다. 이쾌대의 그림은 표현 기법이 참신성이 있고 조형 감각을 엿볼 수 있으며, 서구적 지성과 방법론을 토대로 하는 화풍은 지극히 향토적이고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했다. 1950년 6·25전쟁 직후 서울에 급조됐던 남침 북한체제의 남조선미술동맹에 적극 가담했던 끝에 인민의용군으로 참전하다가 포로가 되어 거제수용소에서 휴전을 맞이했지만 남북포로교환 때 자의로 북한을 택하여 넘어갔다. 월북 후인 1947년에 북한 미술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글을 통해 나름대로의 자주성을 보였으나, 1960년대 이후 북한 사회주의의 형상화라는 새로운 `주체미술`에 동조하지 않아 `민족허무주의`라는 명목으로 숙청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숙청된 이후 자강도 강계시에서 재혼해 살다가 1987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쾌대의 작품은 서사적이고 장엄한 화풍으로 `한국의 미켈란젤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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