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면 따스한 무언가가 그리워진다. 사람들은 군고구마, 어묵국물, 털목도리, 오리털재킷과 같은 것으로 따스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보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따뜻한 옷을 입고, 뜨거운 음식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이 공허하고 사랑과 인정에 대한 목마름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마음속 추위이다.
인간이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내가 맡은 일이 더 중요해 보이고 내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며 내 손가락 다친 것이 남의 암세포보다 더 위중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눈과 귀가 앞과 옆으로 열린 이유가 있다. 바로 앞 사람을 쳐다보고, 옆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연유에서 그러한 것이다. 그렇게 눈 맞추고 귀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나면 자기 마음속의 공허와 추위는 눈 녹듯 녹아내릴 것이다.
기차역에서 나이 지긋한 분이 매표구 역무원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역무원이 뭔가 정중히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그 노인은 그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계속 자기 할 소리만 거친 욕설을 섞어 내쏟았다. 그 소동을 구경하던 젊은이가 혼잣소리하듯 말했다. "나잇값 좀 하시지." 나잇값은 그 연륜에 비해 행실이 좀 가볍거나 덤벙대는 사람을 질책할 때 흔히 쓰는 말이며 젊은 사람보다 주로 나이 많은 사람을 겨냥해 낮잡아 쓰는 말이다.
성공한 인생으로 사는 길은 그 나잇살에 걸맞은 나잇값을 하며 사는 일일 것이다. 어른으로 대접받고 혜택을 주문하고 누리기 위한 스스로의 자격 갖추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기 생각만 옳고 남의 생각은 냅다 무지르는 고집불통은 늙은이 병 중 가장 더러운 것이다. 게다가 귀까지 어두우니 남의 얘긴 아랑곳없이 자기 목소리만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감투 벗은 지 오랜 뒤에도 그 감투 위세하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마음 불편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그 말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가소로움에다 깊은 연민까지 불러일으킬 뿐이다.
누군가를 평할 때 "조조 같다"고 하면 듣는 사람은 필경 역정을 내기 십상이다. "조조 같다"는 말에는 교활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이대접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잇값을 하는 그 즐거움을 찾아 나선 길 위에서 얻어질 것이다. 재산이 많고 몸이 건강하다고 모두 나이대접을 받고 사는 것은 아니다. 몸은 건강한데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더 가까이하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건강한 몸에 비해 마음 건강이 신통치 않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이와 달리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몸까지 병약해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으며 사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음이 건강한 어른들만이 누리고 사는 복이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젊어서 덕을 쌓지 않으면 늙어 죽을 때 고기 없는 빈 연못을 지키는 따오기처럼 쓸쓸하게 죽는다." /우태주 리포터 woopo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