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바위와 말 무덤에 얽힌 이야기
낙산리 동북쪽에 한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옛날 마을 주변이 온통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송골(松谷)이라 하기도 하고, 용마(龍馬)가 난 곳이라 하여 소룡골이라고도 불렀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용마총(龍馬塚)과 함께 150여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남아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애절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왜적이 전 국토를 유린(蹂躪)하여, 그들의 잔악한 횡포에 온 백성들이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룡골 마당재 산줄기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큰 폭발음과 함께 마당재 꼭대기에 있는 단지 모양의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안광(眼光)이 불덩이처럼 번쩍이는 한 장수가 나타났다. 그 순간 다시 큰 천둥소리와 함께 조금 떨어진 오른쪽 바위가 갈라지더니 이번에는 말 울음소리와 함께 용마(龍馬) 한 마리가 갈기를 휘날리며 솟아 나왔다.
이윽고 바위 속에서 나온 그 장수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산신령의 뜻으로 이 마당재의 정기를 타고난 장수이다. 나는 이 나라를 위기에서 건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옆에 있는 용마에게 호령했다. 내가 먼저 너의 능력을 시험해 보겠다. 내가 활을 쏘아서 네가 화살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면 내가 너와 함께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너는 내게 아무 소용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장수에게는 화살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그런 훌륭한 말이 필요한 것이다. 하니, 용마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후 말에 올라탄 장수는 건너편 산기슭에 서 있는 큰 소나무를 향해 화살을 당기고 말에 채찍을 가하였다. 말은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비호처럼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말이 소나무 앞에 거의 당도하려 할 즈음에 화살이 씽하고 지나가는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그 장수는 이는 정녕 화살보다 말이 늦게 도착한 것이다. 하고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말의 목을 내리치고 말았다.
그러나 칼에 잘린 말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화살이 소나무에 꽝! 하고 꽂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본 장수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한없이 뉘우쳤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에 그 장수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그 자리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이렇게 장수가 숨을 거두자 그 맑던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이 들고 천둥과 번개가 온 골짜기와 마을을 뒤흔들었다고 한다. 이는 하늘까지도 그 일을 통탄한 것이라 하겠다. 왜적이 국토를 유린하는 그 숨 막히는 판국에 자신의 사명은 고사하고 명마와 함께 목숨을 헛되게 버렸으니! 이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마을 사람들은 나라의 불운을 못내 슬퍼하면서, 장수와 명마를 각각 제자리에 고이 묻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소룡골 마당재에는 장수바위와 말 무덤이 생겼으며, 화살이 꽂혔던 소나무에는 아직도 그 흠집이 남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