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조가 아니라 쓴 소리를 서슴치 않는 군자
까마귀는 지구상의 조류 8,600여종 중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새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딱딱한 조개의 껍질 속 그 부드러운 속살을 먹기 위해 조개를 물고 30m 정도를 날아올라 바위 위에 떨어뜨림으로써 그 껍질을 깨고 속살을 먹는다고 한다. 어린 새끼와 어미의 안전을 위해 둥지를 만들 때나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에는 둥지와 반대 방향으로 다니기 때문에 그 둥지 찾기가 어렵다.
이솝우화에도 까마귀 이야기가 나온다. 목이 마른 까마귀가 물을 찾고 있었으나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무 밑에 물병이 있는 것을 보았지만 물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아 부리가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자잘한 돌멩이를 병 속에 물어넣어서 물이 위로 올라오게 함으로써 그 물을 마실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까마귀는 시각과 청각이 뛰어나서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 아닌 외부인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동료들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해 몹시 시끄럽게 울어댄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죽음을 미리 알리는 영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해 왔고,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해서 효조(孝鳥)로 불리어 왔다. 성경에도 보면 선지자 엘리야가 폭군 아합 왕의 박해를 피하여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명하여 떡과 고기를 갖다 주어 먹게 했다.
이렇게 까마귀는 동서양을 통해서 지능이 높고, 통찰력이 예리하고, 영적이고 도덕적이며, 의로운 새로 여겨지고 있는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흉조(凶鳥)로 취급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같은 까마귀과에 속하면서도 까치는 항상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데 비해, 까마귀는 언제나 귀에 거슬리는 경고성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좀 의식을 가지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까치는 아첨하는 간신으로, 까마귀는 쓴 소리를 서슴치 않는 군자(君子)로 비유한다.
그런데 이 까마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큰 시련을 겪고 있다. 그것은 까마귀 고기가 사람의 어디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까마귀 한 마리에 50만원까지 호가되다 보니 까마귀가 살아 남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산이나 공원에 가 보면 까치 소리는 요란하게 들리는데 까마귀는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까마귀가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은 동물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을 핵심 기능으로 삼고 있는 언론이라는 까마귀가 계속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날 참여정부가 종래의 언론과 정부간의 취재 관행을 깨뜨리고 새로운 “홍보업무운행방안”을 만들어 기자들의 정보 접근의 길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건전한 대언론 관계 유지를 위하여’라는 구실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자와의 회식 등을 금하게 하고, “앞으로 오보와의 전쟁을 치루어야 한다”느니, “공격을 받으니 전의(戰意)가 생긴다”느니, 전투적인 말을 서슴치 않으면서 까마귀들의 기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더니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지 드디어 정부 기관의 기자실을 모조리 폐쇄하고 대못질을 했다.
거기에다 ‘언론개혁’이란 명분으로 일부 시민단체가 가세하여 “정부의 개혁정책이 성공하려면 조중동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시장을 전면 개편해야한다”, “통일이 되려면 조선일보가 논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러던 것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영방송인 KBS가 또 시련을 겪고 있다. 누군가가 꼭 해야 할 말을 개인이 못하고 있을 때 대신해서 말해 주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이다. 정부의 입맛에 맞는 것만 보도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까치나 하는 일이지 까마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까마귀가 까마귀 소리를 내지 않고 까치 소리를 내려고 한다면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환경오염은 없다. ‘동물농장’의 돼지들이 사람과 같이 되어 보려고 두 다리로 걷는 것보다 더 꼴불견이 될 것이다.
까마귀 고기가 사람의 어디에 좋다는 것은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더 이상 까마귀 잡아먹을 생각 버리고 살려두어 자유롭게 울게 해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한다./배태영 명예교수 ·경희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