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 거부, 학문-후학 양성에만 전념 장복추 선생은 1815년(순조15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본제(本第)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 영남의 3학자이자, 3징사(徵士)의 한 분으로,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경하(景遐)이고 호는 사미헌(四未軒) 또는 녹리산인이다. 일생동안 선생은 성리학에 바탕을 두었으나, 존심양성(存心養成)과 지행병진에 목적을 두고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하였으며, 교육의 방법과 과정을 정밀하게 제시하였다. 정치에는 뜻을 두지 않았으나 나라에 일이 있을 때는 관심을 갖고 상소를 하는 등 국가와 민족을 잊은 적은 없었다. 이런 정신이 제자들로 하여금 구국의 대열에 헌신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은 파리장서를 기초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생은 영남일원에서 700여명에 달하는 문인들을 길렀는데 참 선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학문의 진수를 터득한 대학자이자 예학자이고 교육자였다. 그의 학문은 신기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1996년에 발간된 는 학계 최고의 권위자들로 하여금 우리나라를 이끌어 온 100명의 석학을 선정하여 발간하였는데 투철한 선비정신으로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한 석학의 한 분으로 선정됐다. 선생의 저서(著書)로는 문집 19권, 「역학계몽」「가례보의」「숙흥야매잠집설」「삼강록 간보」「문변지론」등이 있으며, 선생께서 머물다간 녹리고택을 비롯하여 강학지소인 녹리서당과 구욱제가 후손들에 의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그리고 유적비(각산), 유적비(거창 가조 당동), 낙빈동범유촉비(창녕 이방 죽전), 장수비(성주 금수 무학), 장구비(김천 증산 수도)가 있다. 사미헌 선생의 이같은 위업을 기리기 위해 한국문학언어학회 주최로 학문과 업적을 재조명하는 학술발표회가 해마다 활발히 열리고 있다. /이복희 리포터·칠곡향토사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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