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磻溪)리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북쪽으로는 기반산(岐盤山)이 우뚝 솟아 있고, 서남으로는 자고산이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푸른 반계천(磻溪川)이 아름다운 골짜기를 형성하면서 서류(西流)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반계라는 마을 이름은 이러한 수려(秀麗)한 자연경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즉 이곳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중국의 위수(渭水) 강가에 있는 시내 반계(磻溪)와 견줄만하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강태공 고사와 관련하여, 학문과 인격을 닦으며 때를 기다리던 당시 선비들의 정서가 깊이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에 의해 등용되어 주나라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문왕의 조부(고공단보)가 기다리던 인물이라 하여 태공망(太公望)이라 불려 졌으며, 그의 성이 강(姜)씨였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그를 강태공(姜太公)이라 불렀다.
강태공은 젊어서부터 공부에만 힘쓰고 집안일에는 도무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늘 그런 상태이니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너무 가난해서 끼니조차 잇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그의 아내는 이런 남편을 바라보고 살다가 마침내 지쳐 달아나고 말았다.
이후 강태공은 위수(渭水) 강가의 반계(磻溪)라는 곳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만 헛되이 보내고 있었다. 특히 그는 미늘 없는 곧은 낚시로 유명하다. 이를 보고 당시 사람들은 “세상 할 일이 없어 허무맹랑한 노릇을 한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보시오. 조만간 하늘의 뜻을 받은 이가 와서 걸릴 것이오” 하면서 주위의 시선에는 전혀 아랑곳이 없었다.
강태공의 당시 비참한 생활을 통해볼 때, 그는 물고기라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가 됐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물고기를 잡는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세월만 낚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는 자신의 원대한 꿈을 키우면서, 미래를 준비하며 때를 기다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낚시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자연의 순리에 내맡긴 채 오직 오묘한 자연의 법칙과 그에 순응하는 진리를 깨닫고, 물고기를 낚는 기법으로 비범한 용병술을 터득했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그는 문왕을 만나 주나라의 재상이 되고, 제나라의 제후가 되었다.
“군자는 자기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기뻐하고, 소인은 눈앞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한다”는 말이 있다. 이 강태공의 낚시야말로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낚시가 아니요. 세월을 미끼로 천하를 낚아 낸 최고의 낚시꾼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