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사회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집단, 즉 가정, 마을, 조합, 학교, 회사, 정당, 국가 등이 그 주요 형태다. 이런 인간집단은 형태나 크기에 관계없이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고, 동서고금의 인류 역사를 통해 인간집단의 안위와 복리가 지도자의 역량이나 지도력의 여하에 따라 크게 달랐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나나미(鹽野七生)씨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로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도 볼 수 있는 능력과 상대의 속을 꿰뚫어볼 수 있는 인텔리전스’를 꼽았다. 현상을 읽을 줄 아는 통찰력과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혜안과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아량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을 골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쓰는 용병술과 자기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요구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쓴 소리를 경청하고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는 겸손함과 권위의식에 둘러싸여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어떤 정치인이 자기에게 부족한 것은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리면 된다고 했지만 사람을 골라 쓰는 능력이 부족하면 빌려 써야 할 머리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유비와 제갈량을 중심으로 하여 쓰인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조조를 극악무도한 간웅의 전형으로 폄하하고 있다. 그러나 정사(正史) ‘삼국지’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의 삼국관련 자료를 보면, 조조는 결코 일개 간웅으로 희화화할 수 없는 난세의 영웅이었다. 제왕들의 통치력 부재로 인한 환관과 외척 및 청류로 불리는 지식인들 간의 세력 다툼이 첨예화되고, 민중의 봉기가 이어진 틈을 타 군벌세력들이 저마다의 명분을 내세우면서 천하를 차지하려던 시대적 상황에서 혼란과 분열을 잠재우고 천하를 다스린 자는 다름 아닌 조조였다.
창업의 웅지를 품은 조조는 집안의 출신도 불분명한 한계를 극복하면서 당대의 모사들을 초빙하고, 수하에 적지 않은 맹장들을 거느렸다. 조조의 리더십의 근원은 유재시거(唯才是擧·능력만이 추천의 기준이다)로 대변되는 인재 최우선 정책과 신상필벌의 원칙, 청렴성 그리고 스스로 시를 지으며 문학을 장려하고 아낀 문치(文治)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현상을 파악하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용병술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거짓이나 이중성,
음모와 위선에 반대되는 진실성을 갖추지 못하여 도덕적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집단이나 조직을 이끌어 가기 어렵다. 지도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지도자의 도덕성이 조직을 지탱하는 지지대이기 때문이다.
12월 대선을 앞둔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그 누가 21세기에 맞는 인재 중시의 천하경영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민 모두가 잘 살고,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해답을 조조에게서 찾아보라고 하면 무리일까? /우태주 리포터 woopo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