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지금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단순히 경제가 어렵고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등의 문제가 아니다. 거대한 역사적 전환에 발맞춰 시급하게 요구되는 패러다임의 총체적 이행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오랜 세월 익숙하게 살아온 의식과 관행과 문화와 제도를 버리는데 주저하고 있다. 새로운 것은 늘 불편하고 불안하기 마련이며, 때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손해와 손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이행과 혁신에는 첨예한 저항과 마찰과 갈등이 수반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먼저 공직자들은 누구보다 앞서서 빠르고 거대한 시대 변화를 정확하게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지 못하고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대학이든, 지역이든, 국가든, 경쟁력도 미래도 없기 마련이다. 전환기-이행기에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사적 통찰력과 미래학적 예측력, 그리고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공직자들이 오히려 시대의 변화에 뒤쳐져 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조직과 지역과 국가의 변화를 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는 경우까지도 종종 보게 된다. 공직자들부터 시대의 흐름을 통찰해 뼈를 깎는 자기성찰과 자기혁신에 나서야 할 텐데 말이다. 특히 변화와 이행의 시대에는 리더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공직 지도자들이 앞서서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통찰하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과거처럼 정당의 보스나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안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아 지역감정에 기대어 당선된 뒤에는 공천헌금을 회수하기 위해 비리 사슬을 재생산해내는 관행도 더 이상은 안된다. 지역과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투철한 역사의식을 갖고, 지역민과 국민의 미래를 고민하는 책임있는 리더이지 않으면 안된다. 중앙정부로부터의 권한 이양에만 관심있고 지역 주민의 권리 증대에는 소극적인 자세도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지방분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립형 지방화와 잘사는 지방만들기, 그리고 지역주민의 권리 증진과 복지 향상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 중앙집권-수도권 집중 시대에나 어울렸던 군림형, 지시형, 권위주의형 리더십도 안된다. 주민의 생활안전과 복지와 편리를 행정의 최우선 가치로 고려하는 지방행정의 가치 재정립이 요구되는 것이다. 혁신의 시대, 특히 민주적 거버넌스 체제 구축을 지향해 가는 지금, 주민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이다. 지역사회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수동적인 객체로 머물러 있거나 정치와 행정의 대상으로 비켜 있으면서 지방분권과 분산이 추진된다면, 그것은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한 행정 관료 그리고 지역사회의 기득권층을 위한 지방분권과 분산에 머물게 될 것이다. 분권과 분산의 최종 수혜자는 당연히 지역 주민이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를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이 적극 나서고 참여해서 단체장 자치를 넘어선 주민 자치-풀뿌리 자치를 실현해 가야 한다. 국민 혹은 지역 주민이 국가 혹은 지역 발전과 주민자치의 진정한 주인이고 참여하는 주체이기 위해서는 건강한 민주시민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지역사회의 현안은 물론 국가적 과제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여론을 형성해 가면서 시민적 권리를 행사할 줄 아는 성숙한 민주시민이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시민의식으로 특히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이다. 민주주의, 민주적 거버넌스(governance)란 한마디로 다양성을 전제로 한 의사결정 절차이기 때문에,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척이나 몰이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일 뿐이다. 다른 의견들, 다른 정책 지향들, 다른 이념들이 공존하면서 양보와 토론과 타협을 통해 조화로운 하나를 만들어 가는 지혜와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은 합리적인 토론의 자세이다. 자신을 절대화하거나 목소리만 높여서 혹은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이익과 의견을 관철하려는 자세는 올바른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며 차이를 좁혀가는 인내와 자기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토론에 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국가 현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특히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망국적인 지역감정과 돈정치의 구태에서 지역의 유권자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맹목적인 지역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지역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비전도 자질도 능력도 없는 사람을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 후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으로 당선시키는 후진적 유권자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지역이 발전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혁신의 시대에, 거버넌스 체제의 한 주체인 주민들을 책임있는 민주시민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평생교육체제가 갖춰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 대부분이 어릴 때나 청소년기에 가정과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민주시민으로 훈련받아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기성세대가 과거 학교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가치관과 생활관습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기가 어렵다. 앞에서 누차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는 지금 광범위하고도 급격한 변동을 겪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평생교육을 통한 재사회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다.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주민들은 토론 능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하며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훈련도 받아야 한다. 주민의 끊임없는 자기혁신이야말로 전환과 이행의 시대에 역동적인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지난 8월23일 칠곡군근로자복지회관에서 열린 제2차 `칠곡포럼`에서 특강을 한 홍덕률 교수의 강의내용 일부를 게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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