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지난 4월 구관이 전소, 새 건물로 다시 짓고 대성당을 신축키로 한 가운데 이형우(시몬 베드로) 아빠스가 로마 교황청에 20세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청원해 교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58년 건립된 왜관수도원은 화재(원인 누전으로 추정)로 구관이 모두 불에 탔고 신관 옥상과 지붕, 옛 수도원 성당인 참사회의실 지붕 등도 불길이 지나갔다.
건물은 다시 복구하면 되지만 수도원 100년 역사를 담고 있는 수도자들의 유품과 서적, 사진 등이 모두 불에 타 안타까움을 더하게 했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으로부터 돌려받은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이 담긴 화첩은 문서고 철문을 해머로 부수고 들어가 제일 먼저 안전하게 옮겨 보관하고 있다.
불이 나자 일부 수도자들은 구관 출입문 쪽에서 소방 호스를 잡고 불과 사투를 벌여 현 성당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불에 탄 왜관수도원 구관의 잿더미를 치우기 위해 칠곡지역 5개 본당 신부와 신도 봉사자들은 돌아가며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지난 6월에는 왜관수도원 재건을 기원하는 모금 음악회가 최호영(가톨릭대 교수) 신부의 지휘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렸으며 현재도 구관과 대성당 신축을 위해 모금 중에 있다. 수도원 관계자는 "처음에는 불에 탄 구관을 보수해 사용하려고 했으나 결국 타고 남은 골조를 모두 허물고 새로 짓기로 했으며 그 인근에 대성당 신축을 위해 현재 설계중"이라고 밝혔다.
왜관수도원 구관의 재건(부활) 작업과 함께 왜관수도원 이형우 아빠스가 6-25전쟁 전후로 순교한 성베네딕도회 남녀 수도자들과 함흥교구 사제, 평신도 등 36위의 부활을 위한 시복시성을 청원, 결과가 주목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장 겸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인 이형우(62) 아빠스는 지난 5월10일 교령을 통해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2009년)을 맞아 `하느님의 종 신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도와 동료 순교자들` 36위에 대한 시복시성을 공식 청원, 20세기 한국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교구별 시복시성 청원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왜관수도원의 이번 시복시성 소송은 20세기 순교자들에 대한 한국교회 차원의 첫 청원이란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왜관수도원이 청원한 시복시성 대상자는 보니파시오 사우어(한국명 신상원) 주교를 비롯한 덕원수도원 소속 사제-수사 26명, 연길 수도원 사제 1명, 보이론 수도원 사제 1명, 덕원 자치수도원구와 함흥교구 소속 사제 4명, 원산 수녀원 수녀-헌신자 4명 등 총 36명(한국인 11명, 독일인 25명)이다.
순교자 36위 가운데 1위는 1950년 2월 평양 인민교화소에서 옥사한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당시 73세·Bonifatius Sauer Josef) 주교 아빠스이다. 2위는 1950년 10월 평양 인민교화소에서 피살된 김치호 베네딕도(36) 신부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의 베네딕도회 신부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구상 시인의 형인 구대준 가브리엘(37) 신부가 23위로 1949년 5월 평양 인민교화소에서 피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형우 아빠스는 이번 시복시성 청원과 관련, "2007년 2월 개최된 성오틸리아 연합회 평의회의 권고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07년 봄 정기총회에서의 격려로 한국전쟁 전후로 순교한 36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절차를 추진키로 했다"며 신자들의 관심과 기도를 당부했다.
시복-시성(諡福諡聖)이란 가톨릭에서 순교를 했거나 특별히 덕행이 뛰어났던 사람들이 죽은 후에 복자(福者;공식적으로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이 된 성도에게 붙이는 존칭)-성인(聖人 혹은 聖女)으로 추대하는 것을 말한다.
가톨릭에서는 성덕(聖德)이 높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하느님이 그 사람을 통해 기적을 나타낸다고 믿고 있다. 주교(主敎)는 이들의 행적과 저서, 기적 등을 엄밀히 조사해 로마 교황청에 보고하면 교황청에서는 이를 면밀히 검토한 뒤 추천할 만하다고 인정될 경우 교황에게 보고를 하게 된다.
교황이 이에 시복조사를 허가하면 시복시성 성성(聖省)은 본격적으로 조사를 벌여 교황에게 보고를 하고, 교황은 그의 성덕을 인정하는(복자) 교서를 발표한다. 그 후 이 복자를 통해 확실한 기적이 두 가지 이상 일어나면 교황이 의식을 갖고 그 복자를 성인으로 존숭하게 된다. 이들 복자-성인을 공인하는 의식을 시복식-시성식이라고 한다.
시복시성을 청원한 20세기 순교자 36위에 대해 목격 증언을 해주실 분은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전화 054-970-2000)으로 전화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베네딕도는 535∼540년경 자신이 속해 있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을 위해 성 베네딕도의 규율을 작성했다. 수도자들은 이 계율을 따르고 한 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면서 노동과 기도를 통해 수도에 매진하게 된다.
왜관수도원의 역사는 1952년부터 시작됐지만 그 기원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 베네딕도회 생활은 1909년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5명의 수도자들을 서울에 파견, 교육사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1927년 당시 교회의 필요성으로 수도원을 원산에서 가까운 덕원으로 옮겼다. 1934년 만주 연길에도 수도원을 또 하나 세웠다. 그러나 6-25전쟁을 전후로 이들 수도원은 폐쇄되고 수도자들은 옥사하거나 피살-추방됐다.
그러다가 1952년 뿔뿔이 흩어졌던 수도자들이 다시 모여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이 지금의 왜관 성 베네딕도회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이다.
왜관수도원은 내부에 분도출판사와 분도가구공예사, 분도스테인글라스부, 분도금속부, 분도미디어, 분도시청각교육실 등을 두고 있으며 외부에는 왜관 분도노인마을(양로원), 대구 가톨릭신학원, 왜관·서울·부산 피정의 집 등을 운영하고 있어 국내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왜관수도원 서울·부산·대구·광주·미국 뉴턴 분원에서는 피정의 집·종교미술연구소·가톨릭교리 통신교육회·가톨릭 신학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6만㎡(1만8000평)에 달하는 왜관수도원은 20대 초반부터 최고령 미카엘(94) 수사까지 70여명이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어 살림살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미카엘 수사는 100세를 바라 보고 있지만 아직도 대걸레로 수도원 건물 바닥을 깨끗이 닦고 있으며 힘든 농사도 즐겁게 짓고 있다.
그러나 `기도하고 일하라`는 수도회 정신에 의거, 왜관수도원의 수사들에게는 노동의 대가가 없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생산해서 함께 사용할 뿐, 개인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품은 경리를 담당하는 당가실에 신청해 사용하며 10만원 이상일 때는 아빠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왜관수도원은 지난해 11월 선지훈 신부의 끈질긴 노력으로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에 있던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이 담긴 화첩을 돌려받아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특히 왜관수도원은 한국 선교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09년 전세계 오틸리아 연합회 총재들이 참석하는 평의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 행사를 개최한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 왜관의 이름을 세계 가톨릭계에 알릴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