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문화를 돌아보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천년 동안은 불교를 숭상하였고 고려조 오백년은 불교와 유학을 함께 숭상하였으며 조선왕조 오백년은 유교문화를 숭상하였다. 원효의 일심(一心)사상,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퇴계의 경(敬) 중시의 사상 등은 전통문화가 마음을 얼마나 중시하였던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근래 60여년 사이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도달한 것은 이러한 마음 중시의 전통사상을 부정하고 오직 경제 지상주의로 양적 성장만을 강조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질을 무시한 양적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공이 들어가지 않은 탑은 무너지기도 쉬운 법이다. 우리사회에는 많은 심각한 문제점들이 노출되기 시작하고 있다. 젊은이와 노인 할 것 없이 희망과 방향을 잃고 절망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속하게 늘어가고 있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 가치적 삶의 시작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치적 삶의 회복이 요청된다. 사랑과 정의의 가치를 회복하지 않고는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서구의 과학은 객관적 인식의 학문이어서 가치문제를 다루기에는 적합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 유학은 가치문제를 본령으로 삼아 확립된 학문체계이다. 가치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맹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공경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인(仁)이다.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의(義)이다. 공경하는 마음이 예(禮)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지(智)이다. 인의예지는 바깥에서 가져와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본래 가진 것이다.”
외물에서 객관적인 방법으로 가치를 찾으면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게 된다. 가치는 인간의 마음에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사단이 바로 인의예지의 단서이기 때문에 이를 확충시켜 나가기만 하면 천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맹자는 “슬프구나. 사람이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방법은 달리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랑과 정의의 회복이 절실
외모와 외형을 중시하게 되며 젊은 여성들의 얼굴이 모두 아름답게 변하고 있지만 개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 온갖 매체들에 실린 성형수술 광고는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징그럽고 추하다.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 모든 국민의 마음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리에 앉아서는 물론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이 시선을 마주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의 삶이 온통 무너져 내린다. 바깥으로 향한 관심을 안으로 돌리는 일이 시급하다.
선비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맹자는 “뜻을 고상하게 하는 사람이다.”고 대답하였다. 뜻을 고상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인의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王子墊問曰, 士何事? 孟子曰, “尙志.” 曰, “何謂尙志?” 曰, “仁義而已矣. 「진심상」 33장)
사랑과 정의로 가치지향의 삶을 가꾼 사람만이 남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고상한 인격을 형성하는 삶을 방치하며 우리사회는 황폐하게 변해가고 있다. 과도한 욕심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욕망을 감당할 수 없어 총각들은 홀아비로 늙어간다. 가족은 무너지고 다른 사람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노인의 숫자는 급속도로 늘어난다. 경제만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사랑과 정의의 회복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무너진 가치를 찾기 위하여 마음과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가치문제를 해결한 유학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객관적 학문인 과학과 주체적 가치지향적 학문인 유학은 그 상보적 관계로 말미암아 21세기에는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지 않을 수 없을듯 하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이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