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의 생명은 당선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그 생명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이라는 태생적 한계 속에서 정당의 뿌리인 이념과 정통성보다 결합과 분열을 반복해 온 구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후유증은 이번 공천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31일 사퇴한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 25일 계속되는 공천 잡음과 관련해 “편한 길을 버리고 이기는 길을 선택했다. 이번 공천은 흔들린 것이 아니라 일부러 흔든 것”이라며 “이번 공천은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공천이 아니라 이길 사람을 세우기 위한 공천이다. 과정뿐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겠다. 그 결과로 국민 앞에 서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해 온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컷오프되면서 공천 기준에 대한 논란이 격화됐다. 이진숙 전 위원장은 경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점을 문제 삼으며 강하게 반발했고, 실제 여론조사 결과와 동떨어진 결정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이 전 위원장 컷오프를 둘러싸고는 당 내부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보수 진영에서 강한 메시지를 내는 ‘투사형 인물’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한편으로는 당 정체성과 결이 다른 인물을 영입하려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 색채가 분명한 인물을 배제하는 상반된 선택을 보였다.특히, 법원은 지난 31일 자신을 6·3 지방선거 공천에서 컷오프 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결정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재판부는 국민의힘이 컷오프 결정 과정에서 당헌·당규 규정을 위반했거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 중대한 하자가 있고, 이로 인해 김 지사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국민의힘이 법원의 판결대로 당헌·당규 규정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이번 공천이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무시했다는 것이다.국민의힘의 뿌리는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자당은 1990년 1월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탄생한 정당으로, 현 국민의힘의 전신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 겸 민주정의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주도한 이 선택은 이념적 일관성보다 권력 재편과 선거 승리를 앞세운 결정이었다. 야합에 의한 `졸속 합당`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과 기반이 결합한 민자당의 이러한 구조는 이후 보수 정당의 계보로 이어졌지만, 자유우파의 뚜렷한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켜 왔다.국민의힘이 약 5년 반 만에 당명 개정에 착수했지만 오는 6·3 지방선거 이후로 일정을 미뤘다. 국민의힘의 당명 개정은 이번이 여덟 번째다.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한 명칭 변경의 반복이 아니다. 정치적 위기마다 외형을 바꿔 돌파를 시도해 온 보수정당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잦은 당명 변경은 정당의 정체성과 이념이 일관되게 축적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흔들려 왔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름은 바뀌지만 본질은 그대로"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당이 어떤 가치와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이 마련되지 않는 한, 당명 개정은 또 한 번의 ‘무늬변경’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새누리당은 2012년 2월 당명을 개정하면서 당을 상징하는 색깔을 기존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꿨다. 이 바람에 민주당은 2013년 9월 당 상징색을 파란색으로 변경했다. 민주당이 당의 상징색을 파란색으로 결정한 것은 민주당 60년 역사상 처음이다.현재 국민의힘은 당 홈페이지에 게시한 강령이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정치 이념,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한 국민의힘 스스로의 약속이다"라고 명시했다. 국힘의 주요 강령은 "우리는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때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공공의 선이 존재하고,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정치가 정직하고 겸손해야 하며 모든 권력은 분립되고 견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 방식은 이러한 당의 건립 강령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절차를 마무리 짓기도 전에 이른바 `셀프 공천` 논란을 일으키며 통합광주전남특별시장 출마를 위해 자리를 떠난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는 비판이 거세다.이 위원장을 임명한 당 대표와 지도부가 이번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의 헌법과도 같은 강령과 당헌·당규를 무력화한 이번 공천 파행에 대해, 지도부는 엄중한 당원들의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6·3지방선거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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