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령 인도 측량 장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티베트 이름 초모랑마는 ‘대지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네팔어로는 ‘서가르머타(지구의 머리)’다. 일개 식민주의자의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성스러운 산이다.”
강제윤 작가가 쓴 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가 지리학 책을 통해 너무도 쉽게 불러온 에베레스트 산에 대한 나의 지각(知覺)을 새롭게 싹 트게 해 준 대목이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事物)과 지리(地理) 등 이름 붙여진 것에는 역사가 있고 인문(人文)이 있으며, 문화(文化)도 배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름에 대해 알려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대로 부르고 들으며 살아갈 뿐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의 지명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으리라.
혹은 자신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부모가 지어준 이름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내 이름의 유래(由來)를 아는 것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아는 것이 차이가 없다. 그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우주를 아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의 본질은 깨달음이자 자각(自覺)이다. 나를 의심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우주를 의심하는 것이 부처가 깨달은 전부(全部)이다.
강제윤 작가는 이 책에서 또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신들의 일을 하나둘씩 대신하게 되면서 신들의 거처는 점차 좁아져 갔다. 더 이상 현세에 신들의 영역은 없다. 신들은 모두 사후 세계로 쫓겨 갔다. 이제 이 세계의 운명은 온전히 인간의 손으로 넘어왔다.”
난 이 대목을 이렇게 이해한다. 방금 깨달은 나와 내 지역에 대한 유래를 아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온전하게 제대로 인식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 불러주는 이름에 만족하지 않고, 내 눈으로 나의 지각으로 그 이름들을 다시 부르는 것이야 말로 온전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첫 걸음이다. 새로운 이름 부르기를 통해 나를 찾아가고 싶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