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용혜원은 셋방살이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차피 모든 인생은 세상살이인 것을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셋방살이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우리네 삶은 늘 슬펐다 어린 자식들 굴비 엮듯 줄줄이 데리고 산동네 달동네 머무를 곳을 찾아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 어렵사리 얻은 셋방에 한 식구 덩그렇게 앉으면 감사가 있고 웃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애비는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며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비집고 들어서는 반지하 방 한 칸의 서글픔이 있었습니다. 천정에는 여기저기빗물이 샌 흔적이 있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음산하기만 했던 셋방. 그래도 그렇게 들어와 잘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용혜원 시인은 “보증금 월세를 올리려는 집주인 마나님의 싸늘해 보이기만 한 눈빛은 이웃나라 처절한 전쟁소식 보다 코 앞에 닥친 급보 중의 급보였다”라고 했지요. 그때 셋방을 얻으려면 주인 마나님은 아이들이 몇이 있는지를 꼭 물어봤습니다. 그리곤 주인 마나님은 염라대왕 같은 얼굴로 “식구가 많아도 안된다, 아이들이 떠들면 안된다. 빨래를 자주 하지 마라, 사람들이 너무 자주 들락거린다”라며, 잔소리를 해대곤 했습니다. 쫓겨나지 않으려면 아무 소리 못하고 “네네”와 “죄송합니다”를 연발했어야 하는 고된 삶이었지요. 3~4평 되는 좁다란 방에는 삯바느질 하던 어머니의 재봉틀이 있었고, 아이들이 쓰던 앉은뱅이책상 그리고 작은 농이 있었습니다. 또 그 방구석에 놓여있는 요강에서 막내가 똥을 눌라치면 식구들은 코를 쥐고 있어야 했지요. 그렇게 살았던 셋방살이의 추억, 이제는 아련히 저편에 아물거립니다./푸른솔겨레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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