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고, `논어집주(論語集註)`를 읽고, 또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를 읽어보면 무궁무진한 동양의 지혜에 대하여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C.551년에 태어난 공자께서 가르쳐주신 내용이 `논어`라면, 기원후 1130년에 태어난 주자(朱子)의 `논어` 해설서가 `논어집주`였으며, 1762년에 태어난 다산이 다시 해설한 내용이 `논어고금주` 40권이라는 방대한 저서였습니다.
기원전 551년에 태어난 공자는 주자보다 1681년 전의 인물이고, 주자는 다산보다 632년 전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시대적 차이 때문에 공자의 원문에 새로운 해석과 해설을 달지 않으면,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공자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계속하여 논어의 해석과 해설을 달았고, 12세기에 이르러 주자가 모든 해석을 종합한 ‘집주(集注)’를 완성하여, 유교이론을 집대성한 학자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조선 500년 동안 큰 이의(異議) 없이 ‘주자학’이라는 이름으로 주주(朱註)가 대표적인 논어 해설서였는데, 600여 년 뒤의 다산에 이르러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논어`의 해설서가 나온 것입니다.
`논어` 헌문(憲問) 장을 보면 “수기이경(修己以敬)”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을 군자(君子)라고 할 때, ‘경(敬)으로 몸을 닦은 사람이다’라고 공자가 답했습니다. 한 단계 높은 답변을 요구하자, 몸을 닦아 남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사람이다’라고 또 답했습니다. 한 단계 더 높은 답변을 요구하자, ‘몸을 닦아 모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사람이다’라고 답하여 통치자가 해야 할 일의 최고 단계가 어떤 것인가를 공자가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자는 모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은 ‘요·순(堯舜) 같은 성인 군왕들조차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했던 일이었다’고 부연 설명까지 해주었습니다.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은 통치자가 노리는 최고의 목표였는데, 요·순 같은 성인 군왕들도 거기에는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자는 해석합니다. 만약에 요·순이 만족스럽게 여기고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여겼다면 요·순이 될 수 없었다고 해석했습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잘못한 점이 많아 백성들 누군가는 편안하지 못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판단에서 요·순 같은 성인 통치자들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자의 해석은 얼마나 탁월한 해석인가요.
다산은 여기에 하나의 해석을 더 붙였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일은 바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해당되는 말이니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데, 여기에 만족감을 갖는 통치자란, 참다운 통치자가 아니라고 해석하였으며,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함을 병통으로 여기고 만족하게 여기지 못함은 자기 자신이 제대로 닦여지지 않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함을 병통으로 여겼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자·주자·다산의 말씀들. 모두 옳고 바른 주장입니다. 만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치국평천하’를 하려면 지도자 자신이 먼저 제대로 수양하고 인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모든 지도급 인사들이 인식해야만 할 것만 같습니다.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