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화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자 이곳 마을은 잔치분위기였으나 이들 마을과 함께 영남의 3대마을로 알려진 칠곡군 왜관읍 매원마을은 6·25전쟁 때 고택 300여채가 폭파되거나 소실됐다는 주장이 제기, 전쟁의 상흔과 함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왜관읍 매원리에 사는 이동진 새마을문고 칠곡군지부 회장은 화회-양동마을은 국가적인 문화재로 지정, 당국 등에서 보존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지만 매원마을은 조선시대에는 시장과 역이 있었던 곳으로 6·25전쟁 때까지 400여 호가 거주한 영남의 반촌이었지만 6·25전쟁시 폭격으로 한옥만 300여채가 소실됐다. 현재 한옥은 60여 채에 불과해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전쟁만 없었더라면 매원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충분히 등재될 수 있었다고 피력했다. 이회장은 "당국의 무관심과 관리부실로 한 집, 두 집 사라져가고 방치돼 있는 매원마을에 살면서 이를 볼 때마다 조선시대의 마을구조와 골목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택 군락이 하루 빨리 문화재로 지정, 보호돼야 할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이동진 회장의 기고문이다. 우리 모두의 염원은 평화통일이다. 강물은 핏빛으로 물들고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오열하던 60여 년 전, 그날의 참상을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않도록 그 때를 상기하는 낙동강 호국평화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피난 물결은 강물처럼 남으로 남으로 이미 낙동강을 건너 왜관으로 몰려들 쯤 인민군 지휘부인 선발대는 이미 낙동강을 건너 왜관읍 매원마을 박곡종택에 인민군 지휘부가 설치됐다. 1950년 8월 3일 오후 11시30분쯤 북한군의 도하 방지를 위해 낙동강 인도교(구철교) 일부를 폭파, 북한군 주력부대를 차단했었다. 매원마을은 500년 역사 속에 광주이씨가 입촌한후 약 400백 여년을 살고 있다. 이 마을에는 1905년에 정확한 기록에 의하면 400여 세대가 살았으며, 1950년 8월 낙동강 전투에서 한옥이 300여채가 소실되었다. 영남의 3대마을 중에 하나인 매원마을은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왜관의 모든 것은 매원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이제는 현실화 되어야 할 것이다. 낙동강 건너 관호리에 주둔한 인민군 105기갑사단이 발포를 하면 매원마을에 포가 떨어졌다고 전한다. 현재 파미힐스 골프장(신금골짝)에 아군이 쉬는 도중에 공격을 받아 중대병력이 전멸했으며 민간인도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총살을 당해 화를 입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원리 중매(중매) 박곡종택에 인민군 지휘부가 자리를 잡고 있어 박곡종택 중심 반경 500m 이내는 아군의 폭격으로 매원마을 중매 부근은 전소되었다는 것이다. 1단계 사업으로 낙동강 호국평화공원을 원만히 조성하길 바라며 2단계사업으로 유학산과 다부동을 연결하는 평화벨트 사업을 추진하는 시기에 맞춰 아군에 의해 전쟁의 피해를 입은 매원마을을 문화적 차원과 영남의 3대 전통마을로서 관광지로 개발, 정부에서 책임지고 복원을 해주길 바란다. 2001년부터 칠곡군에서 매원마을을 복원을 위한 용역보고서를 작성, 차근차근 진행중에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첫째로 칠곡군의회에서 조례를 제정해 복원사업을 저해하는 신규건축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결국 나중에가면 칠곡군비로 철거보상을 지불하는 손실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할수 있도록 적은 예산이라도 지원, 전통문화 마을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칠곡군화 사업으로 매화낙지형에 맞게 매화군락지를 조성, 관광 자원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담장쌓기 사업과 고택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고택을 보수를 하고 있으나 현실성에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업이 원만하게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왜관읍 매원리 이동진 새마을문고 칠곡군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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