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홍주 합덕지에 해마다 겨울이 되면 얼음의 모양이 용이 땅을 간 것 같이 되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언덕 가까운 쪽으로 세로 갈아나간 자취가 있으면 이듬해는 풍년이 들고,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복판을 가로질러 갈아나가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혹 갈아나간 흔적이 동서남북 아무데로나 가로세로 가지런하지 않으면 평년작이 된다고 한다. 농사꾼들은 이것으로 이듬해의 농사일을 짐작한다."
위는 ≪동국세시기≫ 11월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내일은 동지입니다만 예전에는 이렇게 민간에 전해지는 믿음이 많이 있었지요. 또 이날은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믿음이 있으며,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많아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짓날 날씨가 따뜻하면 이듬해에 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겼지요. 또 동짓날 추우면 해충이 적으며 호랑이가 많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동지에는 악귀를 쫓기 위해 죽을 먹었고, 여름 단오의 부채와 함께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하여 달력을 선물했습니다. 부녀자들은 시어머니를 위해 버선을 지어 바쳤는데 이를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 했지요. 특히 동짓날이 되면 사람들은 모든 빚을 갚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는데 일가친척이나 이웃 사이에는 서로 화합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풀었습니다. 내일 동지를 맞아 이웃과 함께 팥죽을 쑤어 함께 나눠보면 어떨까요?
동지섣달 추위를 이겨내는 아름다운 풍속 동지헌말
“나는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왈칵 치밀었다. 생전에 고운 옷 한 벌 입지 않으시던 어머님, 설날 아침이 되면 겨우 하얀 외씨버선을 신고 절을 받으시며 세뱃돈을 나누어 주시던 어머님께 꽃버선을 사드리고 싶어서였다.” 이 글은 서상옥 님 수필 중 일부입니다. 버선은 무명·광목 등으로 만들어 발에 꿰어 신는 것으로 한복엔 꼭 필요한 것이지요.
연중 동짓달과 섣달 추위는 매섭기 짝이 없어 지금처럼 훈훈한 아파트나 두툼한 점퍼에 포근한 양말이 없던 시절에는 겨울나기가 수월치 않았지요. 이런 때에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는 풍속이 있었는데 “동지에 만들어 바치는 버선”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엔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 시어머니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려고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지는데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多産)을 빈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습니다. 18세기 실학자 이익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손하는 뜻이라 했습니다.
며느리가 손수 도톰한 솜을 넣어 만든 버선을 신은 시어머니는 세상에 더없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풍습이 대대로 이어져 오던 것은 단지 발을 따뜻하게 하려는 것이라기보다 늙고 병들어 가는 시어머니의 주름과 그가 살아온 고난의 한평생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서이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버선 신을 사람도 없지만 동지헌말 정신은 참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