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일. 약속한 군사가 다 오지 않았다. 5백 명 정도의 오합지졸이 모였을 뿐 지휘할 대장도 오지 않았다. 뒤늦게 전열을 정비하여 창덕궁으로 향했다. 경호책임자가 궁궐 문을 열어 맞이했다. 군사들이 인정전에 들이닥쳤다. 황급히 도망쳤던 광해군은 곧 잡혀와 폐위되었다. 1천 명 남짓한 군사로 쿠데타는 성공했다. 이른바 ‘인조반정’. 광해군 정권이 이처럼 허망하게 몰락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광해군은 어렵게 왕위에 올랐다. 서자인 데다 둘째였다. 임진왜란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갑자기 세자로 책봉되었다. 도주에 나선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전선에 뛰어들었다. 의병을 모집하고 항전을 독려했다. 그런데 나중에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에게서 적자 영창대군이 태어났다. 후계자가 바뀔 판이었다. 이 위기를 넘기고 왕위에 오른 것은 대북파의 지도자 정인홍의 목숨을 건 행동 덕분이었다.
광해군 정권이 허망하게 무너진 이유는?
대북파 정권은 지도자인 정인홍이 재야에 머물고, 조정에선 그의 권위에 기댄 이이첨이 실제 권력을 행사했다. 정인홍을 비롯하여 북인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많았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그들은 피난하는 왕만 따라다니다 공신이 된 신료들이 같잖아 보였을 것이다. 오현종사 문제 등을 통해 대북파는 다른 정파들을 무시했고 불화했다.
광해군은 조선시대 내내 폭군, 혼군(어리석은 군주)으로 규정되었다. 그런 일방적 규정은 다분히 승자의 역사해석일 수밖에 없다. 그에게 과오도 있지만 공로도 있었다. 지금 상영중인 추창민 감독의 영화 에서는 진짜 광해와 가짜 광해가 나온다. 이병헌이 두 사람 역을 모두 연기해 흥미로웠다. 두 사람의 광해군이란 발상은 광해군의 공로와 과오가 혼재된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광해군의 과오로 거론 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폐모살제. 계비 인목왕후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가 낳은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 둘째, 인재의 축출, 과도한 궁궐 토목공사 등 정치가 잘못되었다. 셋째, 임란 때 군사를 보내준 명의 은혜를 저버렸다. 폐모살제는 유교국가에서 치명적인 과오였다. 하지만 왕조권력의 특수성에 근거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의 균형외교는 탁월한 정책판단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광해군의 업적으로는 대동법 시행, 동의보감 편찬 등이 거론된다.
광해군과 대북의 몰락은 무엇보다 정치의 편협함 탓이었다. 역모사건의 옥사가 잦았다. 이이첨의 권력남용과 광해군의 의심이 작용했다. 도대체 조작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잦은 역모 옥사는 정권을 역모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고 정치권력의 기반을 더 취약하게 했다. 정작 역모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광해군과 대북의 뺄셈정치로 인해, “서인은 이를 갈고, 남인은 원한을 품고, 소북은 비웃는” 상황이 되었다.
새 정권은 ‘반정’이라 자칭했지만 그 정당성이 견고할 수 없었다. 유교국가에서 ‘효’도 중요하지만 ‘충’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북파와는 다른 덧셈정치로 정당성 부족을 만회하고자 했다. 대북을 제외한 나머지 정파를 포용하고 널리 인재를 기용하는 것이다. 서인과 남인의 연합정권은 역사상 주목받는 붕당정치의 융성함을 연출하기도 했다.
덧셈정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영화 를 보고 대선후보 문재인이 눈물을 흘렸다 한다. 그 의미가 궁금하다. 국왕도 맘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온갖 제약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이 떠올랐을까? 권력의 핵심에 도전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일었을까? 문재인은 야권 제1당의 대선후보이다. 그만큼 프리미엄을 갖고 있고, 또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문재인은 광해군의 역사를 돌아보며 덧셈정치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야권은 지난 총선을 패배로 규정하고 민주통합당의 각성과 변화를 촉구했지만 응답이 시원치 않다. 정파적 성공에 안주하는 것인가. 민주당이 야권의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동안 그 부족분은 안철수에 대한 기대로 채워졌다. 민주당이 특정 정파에 갇혀 있다는 세간의 평가와 주변의 불만 속에 안철수로의 기대 이동과 세력 규합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당정치를 명분으로 안철수 진영을 압박하는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
안철수에 대한 희망은 민주당과 문재인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에 대한 실망이 문에 대한 희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문재인은 안철수에 대한 희망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야권을 대표할 대선후보가 될 수 있다. 영화 에서 서투르고 인간적인 가짜 광해가 나중엔 백성 편에 선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어 관객을 뭉클하게 했다. 문재인이 자신과 동일시했을 수도 있지만, 안철수에 대한 기대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제 야권의 두 세력은 덧셈정치를 고민할 때다. 상대 세력을 정치적 패배자로 만들어서는 덧셈정치로 나아갈 수 없다. 선거제도와 공천방식을 포함한, 정치혁신과 정당개혁의 대안이 필요하다. 자기 먼저 정책과 인물에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 상대 세력과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김태희 다산연구소 연구위원·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