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 제주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 갈제 흥양의 돋는 해는 보성에 비쳐있고 고산에 아침안개 영암을 둘러있네.“ 이는 호남가의 첫머리로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李書九, 1754∼1825)가 다른 고을처럼 이 고장에 대한 노래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여 지었다고 전해오는 노래이다. 나 같은 서울 토박이는 함평하면 호남가보다는 “나비축제”가 먼저 떠오른다. 함평의 함(咸)은 모든 것이 가득차고 원숙함을 뜻하며 평(平)은 평탄할 평, 바를 평, 다스릴 평, 화할 평, 고를 평, 쉬울 평, 거듭 풍년들 평의 뜻을 지니고 있어 태평성세를 구가하는 고장임을 뜻한다니 참으로 좋은 이름이다. 이번 나비축제는 14회로 나는 함평에 사는 친구의 초대로 큰맘 먹고 식구들을 대동하고 나비축제 고장을 찾았다. 함평이 목포 거의 다가는 지점에 있어서 승용차를 몰고 가면서도 걱정이 앞섰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월의 신선한 바람과 대지에 물든 초록 물감을 두른듯한 산과 들의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피곤할 줄 모르고 다녀왔다. “관광객 28만여 명 다녀가 입장료 수입 7억 2천만 원, 행사현장 매출 14억으로 지난해 대비 2억 원 증가, 경제파급 효과 574억 원, 2,208명 고용창출로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라는 함평군 누리집의 종합결산이 말해주듯 뭔가 지역경제를 위해서도 나비축제의 파급 효과는 컸던 것 같다. 나 같은 관광객이야 그저 꽃과 나비와 흥겨운 잔치 분위기만 즐기고 오면 그만이겠지만 주최 측에서는 아무래도 찾아드는 관광객 숫자와 뿌리고 가는 수입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올해로 14회라는 면에서 보면 상당히 구석구석 짜임새 있게 볼거리며 먹거리며 신경을 쓴 것 같아 함께 내려간 식구들이 만족스러워 해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비를 부르려면 꽃이 많아야 하는데 함평의 나비축제 주최 측은 꽃과 나비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함평천지에 유채꽃을 심어두어 행사장이 아니라도 꽃을 볼 수 있게 한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해마다 여는 고양시 꽃박람회 같은 경우에는 꽃 박람회장 안에만 꽃을 심고 가꾸는데 견주어 함평은 그야말로 함평천지가 온통 꽃동산이었다. 특히 유채꽃은 함평 끝자락 고막천변까지 심어두어 한국 최고(最古)의 오래된 고려 때 다리인 고막천석교 나들이 길까지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나비축제와 더불어 연계 관광까지 신경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사람들은 모처럼 한번 내려가서 나비축제만 보고 올라오기에는 너무 아까운 발걸음이다. 함평에는 독립운동가 일강(一江) 김철(金澈 1886~1934) 선생의 기념관이 있는데 선생의 고향마을인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까지 연계하는 셔틀버스라도 운행하면 좋았을 듯싶다. 아니 안내책자라도 비치하여 연계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김철 선생은 향리의 재산을 다 팔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고 1920년 김구 선생과 의용단을 조직하여 조소앙 선생 등과 중국항일대동맹을 조직 활동한 독립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가운데 한 분이다. 또한, 나주와 함평을 잇는 고막천석교는 현존하는 고려시대 다리로 유명하지만 찾아가는 길조차 안내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 몇 번을 네비게이션과 씨름하던 기억은 씁쓸하다. 무릇 지역축제는 현상적인 나비나 꽃 그런 것도 좋지만 역사적인 것도 발굴하여 그 고장을 찾는 이들에게 연계 관광의 보람과 즐거움도 주어야 할 것이다. 과거와 현대의 조화로운 볼거리로 함평의 나비축제를 이끌어 간다면 내년 15회 축제는 더욱 빛이 날 것으로 보인다./최석기· 회사원·서울 은평구 불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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