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에게   문병란이별이 너무 길다슬픔이 너무 길다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이별이 너무 길다슬픔이 너무 길다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그대 손짓하는 연인아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문병란의 <직녀에게>는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빌려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으로 강제로 갈라진 사람들의 이별과 상처를 형상화한 시다. 5·18 광주항쟁의 아픔을 담은 노래로 회자된 <바위섬>의 가수 김원중이 이 시를 시노래로 선보이면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에서 은하수는 칠석(七夕)의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만남을 기다리는 전통적 서사를 넘어서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이 만들어낸 단절의 장벽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시인은 장벽 앞에서 기다리는 데 머물지 않고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이라는 오래된 설화가 이 시에서는 분단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재회와 민족적 화해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의 비극을 기억하면서도 그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단절된 사람들이 다시 만나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담아낸다.황진이(黃眞伊)의 한시 <영반월(詠半月)>은 칠석(七夕)의 애틋한 정서를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으로 꼽힌다. “누구라서 곤륜산 옥을 잘라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을까. 견우가 한번 떠나버린 뒤, 시름겨워 푸른 하늘에 던져버렸네(誰斷崑崙玉 裁成織女梳 牽牛一去後 愁擲碧空虛).”라는 시구는 반달의 모습을 직녀의 빗에 빗대어, 견우와 헤어진 뒤 깊은 시름에 잠긴 직녀의 마음을 표현한다. 반달의 형태와 옥빛을 직녀의 빗으로 연결한 발상이 돋보이며, 칠석이 오랜 세월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과 재회의 정서를 담아온 날임을 보여준다. 칠석의 유래가 된 견우·직녀 설화는 중국에서 비롯돼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에 전해졌고,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우리 생활문화와 어우러져 고유한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았다.우리나라의 칠석 설화에서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며 음력 7월 7일 단 하루만 만날 수 있다. 올해 칠석은 양력 8월 19일이다. 이날이 되면 까치와 까마귀가 하늘로 올라가 몸을 이어 오작교를 만들고, 두 사람은 그 다리를 건너 1년에 한 번 만난다고 한다. 두 사람이 헤어진 까닭에는 사랑과 책임에 관한 교훈이 담겨 있다. 소를 돌보는 견우와 베를 짜는 직녀는 서로 사랑해 혼인했지만, 결혼 후 맡은 일을 소홀히 하자 천제(天帝)가 노하여 두 사람을 은하수 양쪽으로 갈라놓았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소중하지만 자신의 역할과 책임 또한 다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칠석은 예부터 사랑뿐 아니라 근면과 성실을 되새기는 날로 여겨졌다.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는 밤하늘의 별자리와도 연결된다. 견우성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Altair), 직녀성은 거문고자리의 베가(Vega)에 해당하며, 여름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것처럼 보인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천체의 모습을 인간의 삶과 자연의 질서를 설명하는 이야기와 결합해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만들어 전승했다. 칠석을 둘러싼 풍속도 다양했다.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평안과 건강을 빌었으며, 여성들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길쌈 솜씨가 좋아지기를 기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제물 위에 거미가 거미줄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기도 했다. 어젯밤(8월 18일) 약목을 비롯한 칠곡군 일부 지역에는 갑자기 비가 내렸다. 칠석 전날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 칠석 무렵이나 다음 날 내리는 비는 두 사람이 만나거나 다시 헤어지며 흘리는 눈물이라는 뜻의 쇄루우(灑淚雨)라고 부르기도 했다. 칠석 음식에도 가족의 건강과 풍요, 좋은 인연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대표적인 음식인 국수는 길게 이어지는 모양처럼 장수와 오래가는 인연을 바라는 뜻을 지녔으며, 밀전병은 풍년과 넉넉한 삶을 기원하는 계절 음식이었다. 수박과 참외를 넣은 화채나 애호박·호박전 등 여름철 농산물을 이용한 음식도 즐겼다. 지역에 따라 삼베나 무명실을 제물로 올려 건강과 장수를 빌고, 길쌈 솜씨와 가정의 번영을 기원하기도 했다. 곶감을 올리는 풍습도 일부 지역에서 전해졌는데, 이는 풍요와 복을 바라는 민간신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다만 곶감을 벼슬의 상징으로 보는 해석은 전국적인 공통 의미라기보다 일부 지역의 민속적 해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예전의 칠석 풍속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며,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바라는 마음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 칠석은 단순히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을 넘어서 별과 자연을 바라보며 사랑과 책임, 건강과 풍요를 기원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과 지혜가 담긴 문화유산이다. 음력 7월 7일 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며 오랜 이별 끝에 다시 만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오늘날에도 서로를 아끼고 관계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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